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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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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웅현강도사 작성일2003-09-29

본문

2003년 10월 3일 구역예베공과(인도자용)

제목 :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성경 : 마6:25-33
찬송 : 84, 307장

● 들어가며
오래 살고 싶은 욕구와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놀라울 정도의 과학기술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더 오래 사는 만큼 행복한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먹고 입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염려하게 됩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사람들이 염려하며 산다고 말씀합니다. 자연 우리의 관심은 이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이며, 몸을 위하여는 ‘무엇을 입을까’하는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결국 재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히 재물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를 위해 사느냐? 재물이냐 하나님이냐?'

1. 우리의 주는 누구입니까? 재물입니까 하나님입니까?(24)

25절 첫 단어가 ‘그러므로’입니다. 24절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25절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재물이 너의 목숨을 지키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너의 목숨을 지키느냐?’, ‘돈이 너의 몸을 지키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너의 몸을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의 실제 예를 들어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는 공중에 나는 새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들에 백합화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답이 나옵니다. 답은 무엇입니까?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26)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30)입니다. 결국 새와 꽃을 통해 하나님을 보라! 입니다.
롬1:20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사실은 새가 아니며, 꽃이 아닙니다. 그 새를 만드시고 책임을 지시는 그리고 꽃을 만드시고 책임을 지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물며"(30절) 라는 단어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30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영혼 없는 하늘의 새를 입히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지는 들풀도 입히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지으시고 난 뒤에 심히 좋아하신 우리들을 먹이시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누구입니까? 본래 주신 하나님의 그 형상을 온전히 회복시키기 위해 독생자 아들까지 주심 바 된 자가 바로 우리들 아닙니까!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는 말씀에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인가를, 우리가 어떤 가치가 있는 자인가를 하나님이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시면서 ‘너의 가치를 비길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3.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30-31절).

바로 '염려' 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어떤 믿음인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라는 믿음입니다.
시 16:3을 보십시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그런데 이 믿음이 없으면 그때부터 나에게 걱정이 생깁니다. 세상의 눈만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말하는 것에 혹하게 됩니다.

4.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 자존심을 가집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루고 나를 죽일 이유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안 되면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내가 믿으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나를 유익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그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목적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목적이 바른 목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사회적으로 유명인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정몽헌씨가 자살했습니다. 그가 사업에 어려움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우리보다는 형편이 났지 않습니까? 그러면 살아야지요. 그런데 갑자기 자살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모르고 그리고 삶의 목적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우리에게 삶의 목적이 분명할 때 삶의 우선 순위도 바르게 정해집니다. 먼저 주시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적 있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바른 순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 분명하여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고, 우리가 삶의 우선 순위를 바르게 정할 그 때부터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내가 존귀한 자인 것을 알고 주의 나라와 그의 의라는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아 멘 - (주후200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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