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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으로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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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웅현강도사 작성일2003-04-24

본문

200304025 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 부활신앙으로 사는 삶
본문 : 베드로전서 1:3-4
찬송 : 157장 159장

부활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기독교는 죽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사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역시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다시 살아났음을 고백하는 것과 오늘날 우리 역시 다시 살아나서 영원히 사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부활의 고백은 중요합니다. 부활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절하지도 환상으로도 제자들이 무덤을 훔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부활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분명하게 믿고 확신하고 신앙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너무도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자신의 부활신앙과 아직 부활신앙에 의구심을 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부활신앙을 확증해서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부활의 역사적인 증거는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말해 볼까요?(마 28:1-10, 요 20:3-8)
주님의 부활은 여인들이 먼저 보았습니다(마 28:5-6). 그리고 제자들이 보았습니다(요 20:3-8).
①6절 - 세마포가 놓여 있더라. 예수님께서 부활체가 되셔서 빠져나왔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②7절상반절 -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세마포를 풀고 수건을 푼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③7절하반절 - 수건이 잘 개켜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감겨져 있는 채로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손대지 않고 감겨진 상태로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과 베드로가 본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던 정황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 모습을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우리는 확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성령의 감동으로 그 사건을 우리의 부활사건으로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부활이 사실이라면 부활이 가져다 준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이 부활 속에 나타난 은혜와 역사와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믿지 않거나, 신앙을 가지지 않은 것일 것입니다.

2. 역사적인 부활 사건을 통해 신자는 부활신앙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벧전 1:3-4)
1) 절망과 좌절과 실의에서 산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소망과 삶의 이유를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루가 너무 힘들고 괴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고백합시다. 베드로 전서는 베드로의 간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심령의 중심에 있는 양심의 고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닭울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절망과 실망과 낙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현장을 보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낙망과 실의로부터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엠마오의 두 제자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삶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침체에서 다시 영적인 상승세를 말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목숨이 아까워 숨어 지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자신의 목숨을 순교의 제물로 기꺼이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고전 15:31에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날마다 살아야 죽을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의 고백은 “나는 날마다 부활 한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이 땅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절의 산소망은 4절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업은 하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나의 터를 두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의 기업을 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업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땅에 소망을 두면 실망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두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다시 살 수 있습니다(골 3:1-3).
우리의 삶도 영적인 의미로 볼 때 가장 어색한 삶은 하늘에 기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땅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늘의 생명보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도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영적으로 멋쟁이가 됩시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삶을 삽시다. 이것이 하늘에 소망을 둔 자의 삶입니다.

3) 사망을 이기는 삶입니다(고전 15장).
고전 15부활장입니다. 바울은 결론의 부분에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이 한 말은 사망에 대해서 명령하고 자기 명령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망 앞에서 두 손을 들었지만 부활신앙을 둔 사람은 사망을 명령합니다. 장례식은 죽음 앞에서 가장 처절해지는 순간입니다. 발인과 하관에서 사람들은 오열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셨기에 우리도 삽니다. 바울 사도가 부활장에서 명령한 그대로 우리도 명령할 수 있습니다. 사망은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죽기로 작정하고 달려들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한 것이 죽은 뒤에 살 것을 알고 살아간다면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4) 남은 생애를 충성 봉사하도록 요구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산 소망이 부활하신 주님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충성과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죽음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15장 58절에서 더욱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을 힘쓰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적극적인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부활 사건을 통해 신자는 부활신앙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움추릴 필요가 없습니다. 주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기꺼이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가치있고 의미는 있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은총을 입고 그 은혜를 덧입고 살아간다면 그것에 맞는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깊은데로 나아갑시다. 부활하신 주님을 즐거워하며 노래하면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주후 2003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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