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빌립의 "와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성경강도사 작성일2002-11-27

본문

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빌립의“와 보라”
성경> 요1:43-51
찬송> 197, 257장


우리는 지금‘장산2002-jump400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 교회가 함께 기도와 전도에 애써고 있습니다. 2002년을 넘기 전, 출석 400명을 넘자(jump)는 겁니다. “우리는 왜‘점프400’을 해야 합니까?‘점프400’과 내가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분명히 상관이 있습니다. 이 비젼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금년 수준을 300명 선을 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금년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전도에 헌신된 간절한 마음들을 주셨습니다. 전도에 필요한 충분한 전도비도 주셨습니다. 성경은“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드린 헌금에는 우리의 전도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되고 행복하기 위해 이 비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 행복은 나 혼자만의 행복일 수 없습니다. 우리 지역이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변에 계속 늘어가는 대나무가 말해주듯이 어둠의 귀신들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바로 이 지역을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행복가운데 사는 길입니다.


1.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누구에게 달려갔습니까? (45절)
▶ 나다나엘

※ 빌립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형제를 만난 다음 날,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나를 좇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제자로 헌신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45절에 예수님에 대한 그의 고백이 나옵니다. “모세가 율법에서 기록해 놓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사람”즉, 구약 성경에서 말한 구원자라는 믿음을 가집니다. 그는 이 기쁨과 감격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나다나엘’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정확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다른 사람들, 심지어 부모 형제들을 제쳐두고 나다나엘에게 간 것은 늘 마음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새생명축제에 초청할 사람이 있습니까? 나다나엘처럼 내게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초청하십시오.


2. 빌립의 말을 듣고 있던 나다나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46상)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 우리가 열심을 가지고 전도해도 모두가 다 좋은 반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전에 기독교에 대한 나쁜 선입견,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오히려 말을 막고 방해하며 욕하기도 합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정말 진지하게 말했습니다.“우리 민족이 애타게 기다려온 사람, 모세가 율법에서 말하고 또 여러 선지자가 말한 그 사람을 내가 만났는데,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이다.”그런데 나다나엘의 반응을 보십시오. 열심히 듣고 있다가 ‘나사렛’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뭐라고 합니까?“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이 말은 다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아니, 너 나사렛이라고 했니? 농담하지 마라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사람이 나올 수 있니?”당시 나사렛은 갈릴리의 한 벽촌에 불과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사투리를 사용하고, 교양이 부족하며, 이방인과 교제한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았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정통했던 나다나엘이 나사렛이란 말을 듣자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시로 봐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빌립의 진지함에 비하면, 나다나엘의 비난은 너무 심한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하다가 이런 경험을 합니다. 혹 모욕을 받고 창피를 당하더라도 감사하십시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3. 이제 빌립이 어떻게 권면합니까? (46하)
▶ 와 보라

※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한 번만이라도 오라는 말입니다. “내 말을 못 믿겠거든 네가 직접 와서 보라”는 말입니다. 그의 진지한 초청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해 버린 나다나엘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빌립의 이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지만, 자기보다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보다 예수님의 능력이 더욱 강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지만 결국 믿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실 때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한 번만이라도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권면하시며 초청하십시오.


4. ‘와 보라’는 말 속에는 빌립의 어떤 자세가 포함되었습니까? (46하)
▶ 강청하는 자세

※ 단순히 ‘와 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 속에는 “꼭 한 번 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눅 11:8에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주리라”고 합니다. 강청을 뿌리치지 못해서 라도 나온다면, 강청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방법을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부정적이었던 나다나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나다나엘은 빌립의 강청에 못이겨 억지로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180도 변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댈 수 있도록 많은 대상자들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