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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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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 작성일200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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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바나바와 같은 사람
성경> 행11:19-26
찬송> 471, 523장

며칠 전, 제 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이창동 감독의 작품 ‘오아시스’가 감독상과 신인 배우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영화제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주연상을 누가 받는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연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주연만 있어서는 영화가 될 수 없습니다. 조연이 있어야 주연이 주연다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서도 사람들은 5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2달란트 받은 사람도 똑같은 칭찬을 들었지만 왠지 우리의 관심은 2달란트보다는 5달란트에 가 있습니다. 오늘 은 조연의 역할을 감당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정말 그가 없었다면, 복음의 역사, 교회의 역사도 달라질 수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바로 ‘바나바’입니다.‘바나바’를 통해 조연의 아름다움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1. 바나바를 사도로 보는 것이 가능합니까? (행 14:1-3)
▶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 그는 평신도이면서 동시에 사도의 반열에 오를 만큼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사도라는 예수님의 12제자에게 해당되는 용어였습니다. 그 외 사도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바울이 가장 우선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바나바 역시 사도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바나바를 사도라고 부르는 것은 익숙하지 않습니다.그러나 그는 분명 사도였습니다. 행 14:1-3을 보면, 그가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사도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자신이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개인이 감히 사도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나바는 성도들과 다른 사도에 의해 충분히 사도라는 자격을 인정받았고, 이의가 없기에 누가가 기록한 겁니다. 바울과 다른 점은 바나바는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행 9:27을 통해 그가 얼마나 사도들의 신임을 받았는 지를 알수 있습니다. 바울의 회심이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있을 때, 바나바가 그 진실성을 확인해줍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바울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만큼 바나바는 신뢰감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바나바가 인정하면 그 사람은 진짜다’라는 말입니다.


2.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의 회심이 있자, 진실성 확인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사람은 누구입니까?(22절)
▶ 바나바

※ 바나바는 수용성(포용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아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으로 피난했습니다. 이들은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부분 유대인이었지만 간혹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호기심으로 전한 복음이 유대인보다 더 많은 이방인 회심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안디옥 교회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고 이 소문은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소문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려고 사람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사람을 물색하다가 찾아낸 사람이‘바나바’였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신 참으로 적절한 인선이었습니다. 사도들 중에 누군가 갔다면, 그들이 평생 젖어온 유대교적 관습으로 인해 이방인의 열광적인 종교 행위를 이상한 것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유대인이면서도 넓은 마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수용했습니다. 또한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안디옥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바나바와 같은 이런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3. 바나바는 무엇을 중시하는 사람입니까?(25-16절)
▶ 그는 위로자였고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회초리보다는 칭찬과 격려가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인재를 양성하는데도 역시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 위대한 바울은 바나바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알아주지 않아 고향 다소로 내려갔습니다. 한 10년 정도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고향에 파묻혀 있는 바울을 일선으로 등용시킨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흥하는 안디옥 교회를 위해 동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생각해냈습니다. 직접 다소로 찾아가서 바울을 데리고 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바울이 있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는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람입니다. 마가 요한의 경우도 역시 그렇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동역할 수 없다고 버린 마가를 용납하고 받아들여 2차 전도 여행을 함께 떠났습니다. 딤후 4:11을 보면 나중에는 바울도 마가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입니다. 바나바는 별명입니다. 그런데 ‘요셉’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바나바’로 불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바나바’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4. 바나바는 복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까?
▶ 복음을 기뻐하고 삶의 목적으로 가진 사람

※ 그는 안디옥 교회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목격했습니다. 그리고는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곳에 남아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받쳤습니다. 또한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든지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이름과 지명을 중요성에 따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한결같이 베드로의 이름이 먼저 거론되는 것은 그가 으뜸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행 13장에서는 부흥하는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절에는 바나바의 이름이 바울보다 앞서 나옵니다. 그런데 13절에 가면, 놀랍게도 바울의 이름이 먼저 거론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바나바가 전도여행의 주도권을 바울에게 넘겼다는 의미입니다. 바나바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에게는 기득권을 가질 충분한 권리가 있습니다. 행 14:12에 가면 아주 재미있는 기사가 나옵니다. 전도 여행중에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쳐줍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신들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땅에 내려온 것이라’고 하면서 바나바는 쓰스라고 하고 바울은 허메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쓰스는 그리이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를 가리킵니다. 허메는 헤르메스로 제우스신의 대변자였습니다. 누가 더 당당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가하는 말입니다. 당연히 바나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숙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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