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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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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 작성일2002-05-29

본문

구역예배(인도자용)
말씀 : 출 20장 5-6절
제목 : 축복과 저주의 대물림
찬송 : 171, 236장

"신앙이 우선인가 인품이 우선인가?"는 많은 사람들은 고민입니다. 특히, 결혼을 앞둔 자매들이 평생을 함께 하는 배우자를 두고 기도할 때, 이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또 다른 고민은 "믿음이 좋다고 해서 행동이 다 바르다"고 볼 수 없는 아이러니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이 좋은 사람은 행동도 선하고 발라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의 행동이 교회와 주변에 유익을 주는 행동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갈등하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이 내면이 가진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면으로 들어와 외적인 행동으로 표현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외적인 행동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나타나는 '복과 저주의 대물림'을 통해 이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부모의 죄를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출 20:5)
▶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름다운 사랑으로만 가득해야 할 관계가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것을 봅니다. 오히려 둘 사이에 상처와 앙금, 그리고 아픔만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상처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녀들도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강조되는 계명이 제 5계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존재하는 해결되지 않는 깊은 앙금은 실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부모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자녀가 장성하여 그토록 싫어했던 부모의 잔영들이 자신의 몸에 베어있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에게 상처받은 자녀들이 많습니다. 저주의 대물림이 있습니다. 자녀의 삼사 대까지 간다고 합니다. 저주만이 아닙니다. 복도 역시 대물림을 합니다.


2. 저주의 대물림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심각한 신앙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 육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

※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다면 '모전여전'이라는 말도 역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은 부단히 상처받고 자라납니다. 바울 사도는 부모된 우리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부모에게 받은 상처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포근하고 넓은 가슴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자녀는 하나님을 편안한 아버지로 여기게 됩니다. 매우 엄격하신 육신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하나님을 엄한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이같이 육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릇된 선입관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대단히 좋지 못한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에 방해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3. 우리는 이러한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야 합니다. 끊어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출 20:6)
▶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야

※ 우리는 이러한 저주의 대물림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쓴 뿌리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대답은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신자들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의 계명'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용서의 주체를 항상 부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도 부모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조부모님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자신들이 부모에게 받은 저주를 대물림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당한 피해를 인정하고 그들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4. 우리가 부모들을 용서할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우리는 "더 큰 용서를 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 용서의 사람,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는 편애하는 아버지 야곱 밑에서 자랐습니다. 야곱의 편애 때문에 형들에게 말 못하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동생을 미워해야 했던 형들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편애가 자녀들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식량을 사러 애굽으로 왔다가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총리대신이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고 형들이 벌벌 떱니다. 그 때, 형들에게 요셉은 용서를 선언합니다. 요셉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엄청난 죄를 용서받은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은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인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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