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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내려와 영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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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 작성일2002-04-30

본문

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속히 내려와 영접합시다.
성경> 눅 19:1-10
찬송> 204, 208장

사람들은 부자로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을 잘 산다고 말합니다. 부자와 잘 사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는 부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았던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도 역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부자가 아닐지라도 잘 사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삭개오는 원래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돈에서 해방되었고 그 마음에 즐거움이 회복되었습니다. 단순히 부자였다가 잘 사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돈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생활의 수단으로 주신 것입니다.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잠언 8:18).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부자가 되면 저주입니다. 그 사람은 분명 그 부로 죄를 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삭개오처럼 물질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기쁨을 가진 살맛 나는 인생을 살아갑시다. 본문을 통해 삭개오가 변화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피고 교훈을 받아 잘 사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1. 삭개오가 누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까?(3절)
▶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오로지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이 간혹 마음이 변할 때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늘 "돈돈"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돈 밖에 모르던 사람이 예수님께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까? 그의 삶에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 중에 헛된 우상이나 점쟁이(무당)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찾게 된 것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돈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단지 생활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수단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돈이 사람을 위해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위해 삽니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의 삶을 추구한다면 목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관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욱 잘 알고 싶어 성경 공부하시고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무리들로 인해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삭개오가 내린 결단은 무엇입니까?(4절)
▶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뽕나무는 일종의 무화과 나무로서 높이가 9-12m 정도이며 가지가 크게 퍼지고 늘 푸른 잎을 지니고 있습니다. 팔레스틴과 이집트에서는 흔히 길가에 심는다고 하며 사람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입장에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자였고 어른의 체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가기 전에 삭개오는 많이 망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열망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을 던져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주님을 알려고 하는 것에 불필요한 모든 것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3.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5-6절)
▶ 급히 내려왔고 즐겁게 영접했습니다.

※ 이 삭개오의 행동은 이제 마땅히 우리가 보여야할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만나시려고 여리고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생면부지의 삭개오를 향해 그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삭개오야"하고 부르셨습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주님은 나를 아셨습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항상 하나님께서 먼저 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스스로 영접하도록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네가 나를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영접을 기다리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울을 꺽에 바울이 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가 스스로 인격적인 결단으로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4. 우리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께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맡겨야 할 문제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 혹 개인적인 아픔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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