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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산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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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 작성일200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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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부활, 산 소망
성경> 고전15:12-20
찬송> 154, 159장

기독교를 타종교와 비교할 때,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바로 부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성탄절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절기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이 없으면, 여타 다른 종교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의 신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은 "우리 좀 더 착하게 살자. 양심적으로 살자. 인간답게 살자.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한 베푸는 삶을 살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와 석가도 이런 삶을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감히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공자와 석가는 그들의 생애를 죽음으로 끝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다른 성인들과 구별되는 것이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활 신앙을 분명히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분명한 증거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15:1-8)
▶ 빈 무덤과 증인들이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증명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활'은 증명할 논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증명해보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인데, 부활은 우리가 아는 과학의 수준을 초월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증거는 있습니다. 어떤 증거입니까? 빈 무덤과 증인들입니다. 무덤에는 시체가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무덤에는 시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고전 15:5-8을 보면 무려 500명 이상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한꺼번에 동시적으로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무엇입니까? (고전 15:12-19)
▶ 제자들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당황과 절망, 두려움으로 인해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은 실망하고 자기 살길을 찾았습니다. 베드로와 일부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로 고기잡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충만을 받은 뒤에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바울도 역시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숱한 어려움과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끝내는 순교의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당당하게 변화시켰습니까? 무엇이 그들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있는 사건입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이 강조하기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전파,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것이다."고 말할 정도로 당당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확고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3.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고전 15:55)
▶ 사망의 권세를 정복한 것입니다.

※ 우리는 지난 주일에 '겟세마네의 고뇌'라는 제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고뇌'는 사망을 바로 앞에 둔 고뇌였습니다. 예수님도 사망 앞에 고뇌를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은 사망의 공포에 두려워 떨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망이 저주와 징벌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징벌은 막 9:29에는 불과 유황이 타는 곳이요, 마치 불로서는 소금을 치는 것과 같은 고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케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처럼 사망에는 무서운 저주와 고통이 있습니다. 예수님마저도 이 고통 앞에서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망의 저주와 고통을 당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철저히 사망의 권세를 무력화 하셨습니다. 이제 사단은 이 사망의 권세로 인간들을 위협하고 괴롭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사단의 무기인 사망을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값으로 사망에 직면했던 모든 인생이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순간에도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아무도 죽음가운데서 스스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인간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와는 분명하게 구별이 되는 증거입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또 무엇이 있습니까? (고전 15:20)
▶ 예수님께서 우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 고전 15:20 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과실수이든 지, 첫 열매가 맺히면 계속해서 다음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다음 부활의 열매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다음으로 계속 부활하게 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다음 열매의 대상은 '그에게 붙은 자'입니다. 누구입니까?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사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가 믿으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그가 부활하실 때에 함께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우리가 문자적으로 부활한다고 할 때는 "믿는 우리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부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부활을 하느냐?"입니다. 죄수가 철장을 열고 나오지만 사면을 위함일 수 도, 사형을 위함일 수 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합니다(요 5:29). 오직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만이 주님과 함께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을 가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분명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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