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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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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 작성일2002-03-26

본문

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겟세마네의 고뇌
성경> 마26:36-46
찬송> 141, 144장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동참하면서 다시 한 번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절정이요 핵심입니다. 이 고난의 현장으로 나아감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장소가 있다면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이곳은 십자가를 지심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진 중대한 장소입니다. 그 결론에 따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심적인 고통은 십자가에서보다 겟세마네에서 더 심각하였는지 모릅니다. 겟세마네에서 승리하지 하지 못하셨다면 십자가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고난의 십자가에 내어주기 전에 먼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셔야 했습니다. 이 영적 전투는 철저하게 나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 영적 전투의 현장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1. 겟세마네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37-38절)
▶ 고민하여 죽게 되었음.

※ 흔히 이 본문의 제목을 '겟세마네 기도'라고 하는데, 좀 약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겟세마네의 전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는 분명히 영적인 전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영적인 전투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37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 자리로 나올 때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역 현장이 아무리 바쁘고 복잡해도 늘 하나님과 교통하심가운데 평안함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 모든 것이 변했고, 그 평안은 사라져 폭풍으로 변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제자들에게까지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어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38).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했으며, 땀이 피로 변할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통곡을 하신 것입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히 5:7)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신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겟세마네는 야곱이 하나님을 붙잡고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을 수 없다며 처절하게 부르짖은 얍복 나루보다 더 처절한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2. 그 영적 전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39절)
▶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져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과 인간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피하고 싶은 심정으로 갈등하며 영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의 뜻은 이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은 이 잔을 남김없이 받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도는 예수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전에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좇았지 자신의 뜻을 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는 무엇인가 너무 큰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부담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 영적 전투에서 예수님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압박한 것은 무엇입니까? (39절)
▶ 십자가의 잔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을 상징하는 것임.

※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의 잔(십자가)은 유대인이나, 반역자 유다, 마귀로부터도 아닌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의해 채워진 잔이었습니다. 우리중에 부모로부터 버림당한 아픔이 있다면 그것보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그러나 예수님의 버림당함은 단순히 부모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단의 교활한 시험은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고난의 잔이 그의 가장 사랑하는 분이신 아버지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셔야할 아버지께서 자신(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얼굴을 돌리시더니 자식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이 사실을 내다보면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버림받는 고통의 시간에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4. 이 고난의 잔이 의미하는 또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39,42절)
▶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이요 죄인이 당할 징벌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심각한 고뇌는 죄와 무관하신 분이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말을 자주 듣고 믿으며, 이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가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안다면 우리는 이 말을 할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찢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그 수많은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인인 자가 죄인을 대신해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죄인이 받을 징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가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사람이 극한 공포 앞에서 발악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은 요단강 건너편의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내다보시는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계14:10-11). 바로 이 지옥의 진노의 잔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 것입니다.


5. 이 영적 전투의 결과는 어떻게 끝났습니까? (45-46절)
▶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 예수님은 이 고난과 심적 갈등의 영적인 전투 현장에서 결국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마지막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피곤에 지쳐 기도를 돕지 못해 부끄러운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45-46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이상 기도가 필요없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를 풀었다'는 말입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앞으로의 실제 고난의 길을 당당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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