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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07 주일설교요약 "스승이 아닌 아버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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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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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승이 아닌 아버지가 됩시다.

성경> 고린도전서 4:14-17

찬송> 463

 

싫든 좋든 자식은 아버지를 닮습니다. 그래서 싫든 좋든 아버지는 스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자식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은 이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만약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이 아버지처럼 살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아버지는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며 좋은 스승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16)라고 말합니다. 이 말, 정말 쉽지 않는 말인데... 바울은 어떻게 이 말을 이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무엇을 본 받아야 하나?

그런데 성경에 바울에 대한 기사를 보면 자신 있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격이 성숙한 사람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 아이들에게 본을 보여 줄만 한 탁월한 면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격이 까칠해서 싸운 적이 있었고, 급하고 과격한 성격에 대제사장에게 막 대든 일도 있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양보하지 않는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자신의 무엇을 본받으라고 했을까? 고전11:1에서 바울은 이런 말을 한번 더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바울이 본받으라고 한 말은 바로 자신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정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만 있어도 성공적 인생이 될 것 같습니다.

 

1. 희생과 수고로 아들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아들이 있어야 이야기가 됩니다.

바울은 독신인데 그러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그는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영적인 자녀로 생각하고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그는 복음으로 낳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식이 그냥 낳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자녀라고 말할 때에는 그들을 위해 했던 희생과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산파나 간호사가 아이를 품에 안겨다 줍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품에 안은 어머니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아기를 쳐다보는지...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사랑스럽습니까? 내가 고생해서 낳은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적어도 이런 마음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그러했고, 양육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4:9-13 말씀을 보면 오직 자식 하나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같지 않습니까?

4:19에서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에게 자식이 있습니까? 수고와 희생이 없으면 자식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으로 자녀를 낳아봅시다. 나의 자녀가 생기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녀를 목장에서 낳고 목장에서 양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를 생산하는 일에 함께 수고하고 함께 희생하고 또 함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사역이 한 사람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고 교회에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장에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자녀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 갑니다. 그리고 주님과 같은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2. 스승보다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15절 새번역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로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의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아니라 스승 노릇을 하고 있는 때가 많습니다. 가르치기에만 급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녀들에게 중요한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하지는 못합니다. 부모들은 분명히 사랑했는데 자녀들은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표현 방법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아비 노릇을 하지 못하고 스승 노릇에 그치는 이유는 우리의 숨겨진 욕심 때문입니다. 즉 말해서 순수함으로 포장된 우리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지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말 중에 맞는 듯해도 아닌 말이 있습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지 아빠 엄마 잘 되라고 하는 거냐?”.

물론 자식들 잘 되라고 하는 것 맞습니다. 자식 덕을 보려는 마음도 숨어있습니다.

득보려 한다고 해서 득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마 이 마음을 내려놓으면 진짜 득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르치려하기보다는 먼저 사랑합시다. 육신의 자녀는 자연적으로 사랑할 수 있지만 영적인 자녀들은 의지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 없는 사랑을 달라고 하면서 해야 합니다. 스승이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아버지의 권위도 자연히 생깁니다.

 

3.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이 말은 사실 스승의 말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에게 있어 가장 첫 번째 스승은 아버지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른 아버지가 되었을 때 바른 스승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사실 이래라 저래라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요? 아버지가 스승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제 가능하다고요? 아버지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었을 때입니다.

요사이 아버지는 친구일 뿐 스승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목표를 이렇게 잡아 봅시다.

우리는 죽을 때 자식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언을 할 때, “나처럼 살지 말거라하고 말하는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의 목장에서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그러면 나로 인해 예수를 믿는 영적인 아들이 또 다른 아들을 그렇게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딸은 엄마를 보면 알고 아들은 친구를 보면 안다는 말이 있지만 가장 먼저 학습 모델은 부모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본을 따르는 자녀들로, 우리의 영적인 식구들이 모인 목장에서 우리의 식구들에게서 영적인 본을 따르는 자녀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역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주후 20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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