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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03 주일설교요약 "신앙생활의 부침(浮沈),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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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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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생활의 부침(浮沈), 그러나
성경> 열왕기하 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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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먼저 왕하18~20장에 기록된 히스기야 왕의 기록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왕을 평가할 때 좋은 왕의 기준이 되는 사람은 바로 다윗이고, 나쁜 왕의 기준이 되는 사람은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입니다. 그래서 선한 왕들에 대한 표현은 항상 다윗의 길로 갔다는 표현을 쓰고 반면에 나쁜 쪽으로 가면 항상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갔다는 표현을 씁니다. 일단 히스기야의 평가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하18:3)
 

그래서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이방 나라에서 들어온 우상을 제거하였고(4) 이스라엘 자체 우상도 제거했습니다.(4b)
18:8에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하여 국경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유다를 침공해 왔을 때에 그는 엄청난 은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성전과 왕궁을 꾸미면서 사용했던 금을 벗겨서까지 마련해줍니다.(18:16)
앗수르의 2차 침공 때는 히스기야는 좀 더 굳은 마음을 먹고 앗수르를 대항하기로 하였습니다. 1차 침공을 받았을 때 그가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위기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백성들을 설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앗수르의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말고 투항하고 자기에게로 오면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8:29-31)
이어 앗수르 왕 산헤립은 사자를 직접 히스기야에게 보내어 위협합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 왕이 보낸 편지를 가지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펴놓고 하나님이 이 편지 좀 보라는 듯이 기도합니다.(19:14-19)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히스기야 왕은 또 한 번의 대단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20장에,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립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며 낯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히스기야가 병에서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왕이 편지와 예물을 사자를 통해 보냅니다. 아마 바벨론 왕은 히스기야가 병에서 나았다는 소식보다는 앗수르의 벤하닷의 군대 185천을 이겼다는 소식에 더 놀랐을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사자에게 자기 나라의 보물고와 군기고를 다 열어 보여줍니다. 무척이나 자랑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다시 이사야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서 히스기야의 교만을 꾸짖으십니다. 이에 대한 벌은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함락과 그의 후손이 바벨론의 왕궁에 환관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훗날에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고 왕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성취됩니다.
 

신앙생활의 부침(浮沈)
히스기야가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별로 없는 사람입니까? 그 답은 믿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입니다. 우리가 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일평생 변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부침(浮沈), -다운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믿음이 생기고 또 언제 믿음이 사라집니까? 어떤 사람은 위기의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히스기야는 대부분 위기의 때마다 자기의 믿음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면 언제 믿음이 없어집니까? 어떤 사람은 복을 받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복을 주신 것이 그의 기도의 응답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복을 받고 믿음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복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는데 어느 샌가 자신이 잘나서 된 것처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185천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죽을 병에서도 나았습니다. 분명 그때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은혜를 지속시키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항상 겸손합니다. 은혜가 떠나면 자기도 모른 사이에 사람이 교만해져 있습니다. 교만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자기 생각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을 여건이 갖추어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랑하지 않고 점점 더 자기 자랑을 하게 됩니다. 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데 하는 짓을 보면 자기가 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절단이 와서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교만해졌습니다.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보물고와 군기고를 확 열어 제겼습니다.
 

다윗의 길로 가고 있습니까?
히스기야는 믿음이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지만 그를 평가할 때에 성경은 항상 그가 다윗의 행위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생활의 부침은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이 그랬습니다. 범죄하고 회개하고 회복하고 다시 범죄하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부침(-다운)의 패턴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1)하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큰 폭의 업-다운이 계속 되는 사람을 봅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어떤 때는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은혜는 혼자 다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수를 탑니다.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습니다. 좋은 신앙패턴이 아닙니다.
2)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가능한 신앙생활의 업-다운의 폭을 줄이는 것입니다.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의 믿음을 주께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3)하지만 어떤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영적으로 추락해가는 싸이클을 가지고 있습니다.
4)우리에게 신앙생활의 부침이 없을 수 없다고 하면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영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거듭해야 할 것입니다. 그 최종 목표는 주님 닮기입니다.
 

성경은 히스기야의 삶을 다윗을 따라 행한 삶으로, 성공적인 삶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믿음이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 역시 신앙의 업-다운이 있었지만 그는 흐르는 세월에 영적으로는 성장과 성숙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의 생애를 보면, 한 번의 신앙체험이 우리의 평생의 믿음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한 번의 범죄가 영원한 멸망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여러분의 삶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바울은 롬14:12에서 우리 모두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행한 일을 직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평가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다윗의 길로 간 것입니까? 아니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간 것입니까? 그러면 남은 세월은 어떻게 가시겠습니까?
 

부침 속에서도 상승곡선을 타는 사람은 주어진 믿음의 순간마다 더 선한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믿음의 결단해 나갈 때입니다. 아멘 (주후 20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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