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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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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경 작성일2002-03-19

본문

구역예배(인도자용)
제목>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성경> 히4:14-16
찬송> 490, 484장

사람들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만나면 신(절대자)을 의지합니다. 불신자들도 자신이 당한 위기를 젊은 패기와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젊음과 패기, 노력, 그리고 진실한 삶의 태도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이 이런 심각한 상황을 만나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나를 한 번만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젊음과 패기, 진실한 삶의 태도가 무익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1. 성도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16절)
▶ 하나님의 긍휼

※ 16절에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5). 야곱과 에서는 한 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는데, 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형편이 어렵고 행색이 초라하다고 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합니다. 부자나 권세가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 우리의 일생이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야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6절)
▶ 때를 따라 돕는 은혜

※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사람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시의 적절한 은혜'를 말합니다. 필요할 때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역사 해주시는 은혜입니다. 전 3장에서는 사람이 살아감에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때를 따라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안되는 인생입니다. 로마서 9장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성경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롬 9:16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사람이 아무리 머리로 연구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않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는 사람은 환난이 축복을 바뀝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의 삶이 하나님의 적절한 은혜를 받음으로 복된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도무지 일어설 수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거뜬히 일어섭니다. 역전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이러한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
▶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 본문은 우리가 은혜를 받아 복된 인생이 되려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은혜보다는 진노가 어울리는 죄인들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구약의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성전(성막)의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한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희생제물의 피를 들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몸에 끈을 묶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혹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이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성소는 거룩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진노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진노의 자리가 되느냐 아니면 은혜의 자리가 되느냐는 무엇에 달렸습니까? 바로 정결한 대제사장이 깨끗한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이 대제사장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14절). 피로 바쳐진 어린 양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 바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진노의 장소가 은혜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 보좌로 나갑니다.



4.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까? (16절)
▶ 담대히 나아가라

※ '담대히'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고 속죄의 어린양 되심을 확신하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 우리는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은혜의 보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려움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을 결코 거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특히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아픔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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