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160410 주일설교요약 "살찐 여수룬의 배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6-04-14

본문

제목> 살찐 여수룬의 배신
성경> 신명기 32:9-15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경계하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노래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한 내용 중의 한 소절입니다. 이제 이 노래는 우리의 노래가 되어 죄를 범할 가능성에서 우리를 구출할 수도 있어야 하고, 혹시 범죄하여 징계를 받더라도 속히 회개할 수 있도록 돕는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부인 이스라엘(9)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신명기서에서 주시는 교훈은 순종하면 복이요, 불순종하면 저주라는 아주 단순한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복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복을 누가 줍니까?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저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말하면 불순종하는데 모르는 척하고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장 안타까움은 복 받아야 할 자기의 백성이 복 주실 아버지를 두고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9절에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이 말은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전부였다는 뜻입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말, “내가 너 하나 보고 산다라는 부담스런 말을 하는데 듣는 자식에게는 부담스러운 말이지만 실제로 이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고 합니다.
 

복 받는 훈련(10-11)
복을 주고 싶은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불순종한 자에겐 복을 줄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자식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그것을 11절에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시키는 비유를 사용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보금자리는 벼랑끝 절벽에 있습니다. 독수리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이곳에서 철저하게 자기의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합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가차 없이 벼랑끝 절벽으로 새끼를 몰아냅니다. 새끼들은 위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하지만 이내 새끼들은 벼랑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들은 살기위해 날개짓을 시작하지만 아직 익숙지 않는 날개짓으로는 힘없이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맙니다. 그런데 죽었구나 싶을 때 어미 독수리가 어느 샌가 하강해서 날개로 새끼를 받아 올라갑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새끼 날개에 힘이 붙고 자기 힘으로 힘차게 창공을 날게 됩니다. 드디어 공중의 제왕 이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이미 이 훈련을 통과한 분들을 알고 있고, 제가 모르는 가운데 이 과정을 거친 기가 막힌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근육입니다. 그 근육은 결국 하나님의 복을 받을 근육이 됩니다. 아무리 맛있는 산해진미도 먹고 소화해 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먹어서는 독이 될 뿐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 복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것을 봅니다. 차라리 저런 복을 받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되지도 않았을텐데...
영적인 근육이 필요합니다. 이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줘도 받을 수가 없고, 받은 것 같아도 한 순간에 날려버리게 됩니다. 나중의 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훈련은 무슨 훈련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광야는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훈련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졌고, 반석에서 물이 터졌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고 하늘 양식 만나가 아침에 이슬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 그들이 깨달았던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젠 되었다고 생각하시고는 여러분에게 주실 때는 조금은 더 긴장할 필요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은 되었다고 주신 것이 아니라 되었는지 한 번 보자며 시험하시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복을 받을 그릇이 되었는지는 여러분이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살찐 여수룬의 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마음껏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가나안은 그들의 로망이 성취되는 곳입니다. 13절에 보면, 그들은 이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지 않도록 밭에서 직접 심고 기른 것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꿀을 먹을 수도 있었고, 기름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야생 꿀을 먹어보고 싶었고 유실수를 통해 기름을 짜서 먹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4절을 보면, 버터나 치즈 양질의 밀과 포도주도 마시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다 이루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야 마음껏 누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살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배가 부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여기에 사용된 여수룬은 이스라엘을 일컫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여수룬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고 살면서 살이 쪘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줄 알았더니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15절 마지막에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을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 과정이 사라집니다. 자기의 경험이 우선하고 인생의 노하우가 더 우선합니다. 이전에는 새벽에 하나님을 찾았는데 기도 없이 일을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리지 않고 혹 들려도 순종할 마음보다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괜한 말씀을 들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론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여수룬은 순종을 하는데 살찐 여수룬은 배신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배를 골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순종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다 복을 주면서... 하나님은 왜 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나?”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살찌면 배신할 여수룬이 아닌지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물론 살찌기 전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배반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대체로 이런 사람은 한번 쯤 전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무턱대로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적은 것에서부터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순종을 나타내야 합니다.
 

여수룬그 이름으로...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물질로도 복 받은 것이 감사합니다. 하지만 살찌면서 변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한 순간에 바뀝니다. 어떤 성도는 서서히 바뀝니다. 서서히 변화되는 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징이 감사가 없어집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 복을 걷어차면 안 됩니다.
 

여수룬, 이 명칭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부르는 애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배반의 이름으로 쓰이면 안 됩니다. 귀엽고 사랑스런 그의 백성, 그의 아들 여수룬... 이 이름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2016.4.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