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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3 주일설교 요약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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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6-03-17

본문

제목>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고
성경> 민수기 9:15-23
찬송> 33, 회중찬양,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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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이동 원칙
오늘 본문은 출애굽 한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어떤 원칙에 의해 이동하였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원칙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고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성막을 세운 날이라고 되어 있으니 오늘 본문은 그 성막이 완공되고 난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성막이 완공되고 난 뒤에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막 바로 위에 덮었습니다. 이는 아마 출애굽을 하자마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구름기둥이 그 위치를 성막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관심은 그 구름과 불이 이동을 한다는 것이며 그 이동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도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이동원칙을 통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칙 하나를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아 천국 가는 여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존 번연이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도가 천국 가는 여정을 그려놓은 책입니다. 우리의 천로역정에 어떤 원칙으로 걸음을 떼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오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 내려 놓기
2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양한 이동 경우를 말하다가 최종 정리하는 결론입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23)
그러면 성도의 인생여정의 핵심원칙이 뭐란 말입니까?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결정권이 나에게 없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권이 없으면 책임도 없고 책임이 없으면 부담도 없습니다. 부담감은 자신감을 없게 만들고, 조그만 일에도 소극적이 되며 그 이후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도 쉽게 못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양한 이동 케이스를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구름이 성막 위에 오래 머뭅니다. 그러면 오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20절에 보면, 구름이 며칠 안 머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빨리 짐을 싸야 할 것입니다. 분명히 이렇게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짐 푼 지 며칠 됐다고 또 싸야해?”
그런데 이런 사람은 21절의 경우를 만나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 짐 풀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구름이 또 떠오르는 겁니다. 어떻게 해요? 그래도 가야하는 걸 말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쉴 틈을 주지 않고 일이 터지는 경우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하라고 하면 하면 되지!” 생각하고 그냥 하면 됩니다.
이런 케이스도 힘들지만 저는 22절과 같은 경우도 힘든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름이 몇 달씩 계속 꿈쩍도 않고 성막 위에만 있는 겁니다. 그러면 조급증이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 가나안에 가냐?”하며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경우는 도무지 일이 없는 경우입니다. 뭘 해야 할 것 같은데... 계속해서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도대체 뭘 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여기에 가만히 있은 지 얼마나 됐지?” 이런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도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답답한 이유도 무엇입니까? 이게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맡겨진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떻게 그 때를 알 수 있습니까?
 

1. 말씀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이유는 옳은 길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판단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내가 가야할지 있어야 할지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읽기 시작하면 나의 문제에 대한 답을 말씀으로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는 데까지 나가면 말씀의 인도를 더욱 명확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우리는 가야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알리는 구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2. 환경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천지만물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내가 해야 꼭 해야 할 일이라면 하나님이 그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길이 안 열리면요? 그것은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꼭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드는데 환경은 안 열린다? 그러면 그것은 좀 더 기다라는 의미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꼭 해야 할 일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즉 가야할 때가 있고 있어야 할 때가 있는데 가만히 있어야 할 때에 가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부분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할 때와 멈춰 있어야 할 때를 알려주십니다.
 

3. 성령님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오늘 날의 구름은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가야할지 있어야 할지는 성령님이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에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가 그 분의 인도를 받기에는 영적으로 너무 어둡고 무딘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 분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성령의 시대를 살면서 성령의 인도에 대해 가장 무감각한 시대를 사는 것만큼 모순된 삶이 없습니다.
 

이미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고 인도하십니다. 그 분이 가르쳐 주십니다. 지금이 가야할 때인지 머물 때인지를 말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마음에 때로는 평안과 기쁨을 주시면서 확신을 주십니다. 그것은 그게 하나님의 뜻일 때 성령님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분은 우리의 마음에 불안하게 하기도 하고, 근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님이 함께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이 시대에 우리의 심령에 떠오르고 움직이시고 멈추시는 구름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가시면 우리는 가면 됩니다. 주님이 멈추시면 멈추면 됩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인 것처럼 살지 말고, 이 광야 같은 인생, 어차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내 손,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에 달린 것인데 주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면서,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으면서 우리의 광야 길을 누구보다 평안하면서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주후 201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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