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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8 주일설교요약 "전에 청했던 사람과 후에 청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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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5-10-22

본문

제목> 전에 청했던 사람과 후에 청한 사람들
성경> 누가복음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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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14:1에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의 집 식사 초대를 받아 가서 하신 비유의 말씀인데 예수님은 이 말로 결론을 맺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14:24)
예수님의 이 비유를 전도의 명령으로 생각해 봅시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종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구원 초청을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받고 움직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상황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비유의 내용을 두고 말한다면 전에 청하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까? ‘후에 초청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인생의 결핍이 있는 사람입니다.
21절에 전에 초청을 받은 사람이 초청에 응하지 않으니까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21b)
모두 한결같이 결핍이 있는 자들입니다. 문제를 가진 자들입니다. 아픈 자들입니다. 장애를 가진 자들입니다. 무시당하기 쉬운 자들입니다. 사실 잔치자리에는 안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분위기를 흐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아예 이들을 지명해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데려오려고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이 데려오라고 할 때에 데려오기 어려운 사람이 있고 데려오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데려오기 어려운 사람은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미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지위도 있고, 돈도 있고, 학식도 있는 갖출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올 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단 기도로만 섬길 사람입니다. 기도로 섬기다가 주기적으로 그에게 결핍이 찾아왔는지 점검을 해 보면 됩니다.
문제는 데려오기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싫은 사람입니다. 주님 말씀에 가난한 자, 몸이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입니다. 일단 이런 사람들이 오면 장면이 별로 안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도 신경이 쓰입니다. 결정적으로는 이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득합니다. 일단 이런 사람들은 상처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 섬기는 것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그러니 또 자연히 쉽게 지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싫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사람들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자들이 결국 구원을 받는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종입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종입니다. 저는 사실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핍자들을 부르시는 이유
그러면 이런 사람들만 구원 받는 것입니까? 딤전2:4에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은, 두 눈과 두 발이 멀쩡한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핍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종이 되기로 작정한 자인지 우리의 중심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16:24)
주님으로부터 이것에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영혼도 맡겨주실 것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8)
그래서 주시는 대로 만나는 대로, 보게 하시는 대로, 생각나게 하시는 대로 다가가서 데려오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인도되는 대로 또 감당하면 됩니다.
 

2. 기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22절을 보면, 종이 나가서 주인이 명령대로 사람들 데려다가 자리를 채운다고 채웠는데도 여전히 남은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종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2)
그래서 여기에 시내 거리와 골목’(21)은 성안입니다. 하지만 산울타리는 가는 성밖이기 때문에 시내 거리와 골목’(21)에서 데려온 자들은 유대인 중에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고, 길과 산울타리 가로 가서 데려온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난 곳에 주님이 부르시는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는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더 안 오려고 하기 때문에 강권해서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강권한다고 해서 옵니까?
그런데 여기에 강권한다는 말은 끝까지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하면 끝까지 설득해서 데려올 수 있을까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와 섬김입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영혼구원은 기도와 섬김의 두 레일을 타고 온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요, 섬김은 vip를 향한 간절함입니다. 영혼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섬김은 VIP가 우리의 진심을 알게 하는 과정이 됩니다. vip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영혼구원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vip를 어떻게든 섬겨야 합니다. 그 섬김이 단기간의 일시적인 섬김으로는 안 됩니다. vip는 우리보다 더 눈치가 빠릅니다. 그들은 교회로 사람들 데려가려는 수작(?)임을 압니다.
그래서 꾸준히 섬겨야 합니다. 그 사람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도록 해야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함께 나누려고 해야 합니다.
 

섬김은 어디까지 섬길 때 그들의 마음이 돌아설 수 있습니까? 섬김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섬길 때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주께로 2개월’ - 다시 영혼구원의 본질적 관심을 회복하는 기회로
전에 청했던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생각으로 작정했던 사람입니다. 후에 청한 사람은 주님의 마음으로 다시 작정하여 초청하려는 사람입니다.
혹시 연초에 우리의 작정이 전에 청했던 사람의 부류라면 다시 작정해 봅시다.
 

할 수만 있으면 이번 주께로 2개월을 통해 목장으로 교회로 인도되어 최종 구원을 얻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주께로 2개월은 주님의 본질적인 관심사에서 떠나 버린 우리의 마음을 다잡는 기간입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시킬 수 있는 자처럼 하지 말고, 우리는 오직 영혼구원의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기도와 섬김으로 그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처음부터 큰 것을 생각하지 말고 소원을 주신대로 하나씩 하나씩... 하게 하시는 만큼 합시다. 하지만 할 수 있는데 못한다고는 하지 맙시다. 그렇게 나아가면 분명히 우리는 어느 날 주님의 영혼구원의 선한 도구로서 세워져 있을 것입니다. 아멘 (주후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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