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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9 주일설교요약(목장교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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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2-08-23

본문

제목> 말씀을 붙드는 자의 행복
성경> 요한복음 6:66-69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그 말하는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곧 우리의 믿음이며 어느 정도 믿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붙들수록 행복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나도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 한 사람을 오늘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에 대해서 많은 것으로 소개할 수 있지만 베드로는 말씀을 붙든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
베드로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서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돌이켜 봅시다.
 
1. 이해가 잘 안 되어도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6장 첫 부분부터 읽어보면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군중들은 예수님을 더욱 찾아 따라다녔고 예수님은 이런 군중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의 의미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60절에는 예수님의 설명에 군중(제자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66절에는 이후에 제자들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12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67)고 묻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말이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이리까”(68)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다른 군중들과는 달리 주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이 말씀을 잘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 그렇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몇 번씩이나 말씀해주셨음에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것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법(교리)이 처음 이루어졌던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서 이 법(교리)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처럼 너의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당시의 아브라함의 상황을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롬4:18)라고 말하였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이 거짓이거나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이유는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현실적(세속적)이었음에도 말씀만은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자신을 찾아 다시 모여든 군중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은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심각하게 받는 문제는 영적인 것보다는 대부분 육신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느 때 기도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제목은 사업실패, 질병, 자녀문제 등...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면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라는 말을 한 베드로는 영적인 사람입니까?
조금 후에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큰 자이냐’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야고보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들을 예수님께 청탁하는 것을 듣고는 열 제자가 분을 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1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가 제일 먼저 취했던 행동은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얽매여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제자로서의 헌신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헌신을 하고 난 뒤에도 세속적인 문제로 여전히 갈등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럴 때도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했던 바로 그 고백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 고백 하나는 정말 무식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붙들고 있는 세월 속에서 나는 변합니다. 말씀이 나를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3. 실수를 했음에도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본문의 베드로의 고백 자체는 너무 귀하고 훌륭하지만 이 고백 속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너희도 가려느냐?”라는 질문의 답으로 했던 말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가도 우리는 안 떠납니다.”라는 결의가 있습니다.또한, 예수님이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라고 질문하셨을 때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말함으로 12명 중에서 리더로서의 모습을 정확하게 드러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른팔이라는 의식이 베드로에게는 항상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생각은 일 년 사이에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이 장담하면서 했던 말들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비천한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예수님의 그렇게 간절한 부탁에도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할 수 없었던 무능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기에 대한 믿음은 다 무너졌지만 그래도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는 이 고백은 베드로에게 그대로 남았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 그가 떠올린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는 통곡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물론 염치없는 일이었지만 그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솔직히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부활하신 무덤에 제일 빨리 들어간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똑똑하지 않아도, 거룩하지도 않고 당당하지 않아도, 진드기처럼 말씀에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후에 베드로는 더욱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그날에 남자만 삼천 명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행2장) 그는 산헤드린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 바울처럼 구약의 말씀을 재해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적용하는 신학적 논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 말씀만을 붙들려는 중심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산 사람입니다. 정말 그의 인생에 최고의 고백이요, 결단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이 고백으로 말씀에 끈질기게 붙어 있어서, 결국 내게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주후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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