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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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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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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김의 축복

성경> 마태복음 20:25-28

찬송> 32, 426,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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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역설적인 말이 많습니다. 역설이라는 말은 말을 거꾸로 한다는 말입니다. , 말이 안 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죽어야 산다” “약할 때 곧 강하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말씀 등입니다.

그러나 일반 법칙은 주라 그리하면 너의 것은 없어질 것이다.” “죽지 마라.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약하면 당한다. 어떻게든 강자가 되어라이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논리로 살 사람이 아니라 성경논리로 살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세상의 논리와 신앙의 논리를 구분해서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25절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절은 그리스도인의 논리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논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 예수님, 그분은 왕이심에도 섬기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왕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섬기느냐 하면 죽기까지 섬긴다고 합니다. 세상의 논리는 말이 안 됩니다. 역설이라도 이만 저만한 역설이 아닙니다. 종이 종노릇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왕이 종노릇을 합니다. 역설입니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제자들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이 제자들에게 왕은 섬기는 자가 아니라 다스리는 자입니다. 곧 예수님이 이 나라에 왕이 되셔야 하는데 종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고, 무슨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라 다녀봤자 자신들이 득 볼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다스려야 합니다. 그런 주군이어야 그 밑에서 자신들도 권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나중에 제자들도 진정한 통치는 섬김에서 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처럼 이들도 죽기까지 섬기다가 순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2. 기독교인의 섬김은 부활신앙에서 시작됩니다. - 죽어도 산다!

왜 이렇게 죽기까지 섬길 수 있습니까? 여기에 기독교의 가장 큰 역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역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입니까? 죽어도 사는 부활입니다.

우리는 부활 신앙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는 죽어도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데 그 살아날 때는 지금의 우리의 모든 연약한 것인 다 없어지고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 말은 이미 증명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부활신앙에 투철하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가장 큰 무기로 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최고의 형은 사형(死刑)’입니다. 그래서 가장 크게 협박하는 일반적인 말이 너 죽을래?” 아니면 너 죽고 싶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를 믿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길 수 있습니다. 죽은 것도 우리에게는 손해가 아닙니다.

 

3. 섬김의 축복!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희생에는 놀라운 열매가 있습니다.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래서 기독교의 희생은 나만 손해 보는 것으로 끝나는 억울한 희생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살리고 나도 더욱 좋은 모습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받고 싶어하지 섬기기를 싫어합니다. 섬김에는 수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섬기다보면 무시당하기 싶습니다. 섬김이란 결국 종들이나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섬김은 공동체를 살리고 나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섬기는 것은 종들이나 하는 저주스런 일이 아니라 섬기는 것은 축복입니다.

 

4. 가정교회는 구체적인 섬김의 장이 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섬기지 못했습니다. 아니 섬기기도 했지만 항상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섬김이란 구호에만 그칠 때가 많았습니다. 섬김이 오락처럼 즐거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은혜 받았을 때에 섬길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섬김은 일시적이었을까요? 구호에만 그쳤을까요? 구체적으로 섬길 장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경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아닙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지상 교회의 한계 때문에 천상 교회만 사모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지상교회가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상의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축복마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교회를 교회답게 체험할 구체적인 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교회는 목장을 통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가정교회의 목장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섬김입니다.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목장은 교회입니다. 지상의 교회입니다. 그곳 역시 완벽한 곳은 아닙니다. 지상 교회가 가질 수 있는 그 많은 문제가 바로 그 목장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의 구체적인 섬김의 장입니다.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평택 참사랑교회 서순석 목자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목자로서의 섬김이 때로는 힘들 때도 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담임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다시 알콜 중독자가 되어서 떠실래요? 뜨는 자를 섬기는 자가 되실래요?”

병든 자가 되실래요? 건강한 자가 되어 병든 자들을 섬기실래요?”

가난한 자가 되실래요? 부요한 자가 되어 가난한 자를 섬기실래요?”

 

섬기는 것은 분명 수고가 동반하는 것이지만 또한 확실한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항상 누리고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섬김 받는 것과 섬기는 것 중에 우리가 택할 것은 무엇입니까? 섬김을 통하여 누렸던 축복이 있으면 나눠봅시다. 섬기는 자로서의 준비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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