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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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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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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로를 받게 하는 사람
성경> 살전3:7-10
찬송> 411, 370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외치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건너간 곳이 지금의 유럽지역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게도냐에 첫 번째로 설립된 교회가 빌립보 교회이고 그 다음 개척지가 데살로니가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세 안식일 동안 성경 강론을 하고 복음을 전했는데 큰 성과를 냈습니다. 헬라인의 큰 무리가 예수를 믿었고, 그 가운데는 사회적으로 유력한 귀부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설립됩니다. 하지만 적극적 반대자들도 있었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목숨 걸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행17:4-5) 바울은 더 이상 그곳에서 머물지 못하고 형제들의 보호 속에 베뢰아로 갑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를 떠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걱정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 든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베뢰아까지 내려와서 난동을 부린 사람들입니다. 할 수 없이 바울은 또 베뢰아에서 아덴으로 내려갑니다.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바울은 베뢰아에서 헤어지기 전에 실라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고 자신만 아덴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아덴에서 다시 고린도로 내려갑니다.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던 바울에게 디모데가 와서 희소식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소식일까요? 데살로니가 교회에 환난과 박해가 있을 줄 알았더니 없었다? 이것입니까? 아닙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들이 믿음을 버리지 않고 더 열심히 신앙 생활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멘!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의 기쁜 마음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1. 다른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는 성도가 되십시오.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7하)
이 세상에는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위로를 해 주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위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위로를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늘의 위로? 예, 맞습니다. 그것만큼 확실하고 깨끗한 위로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에게 그 위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가 주는 위로만 생각하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이사야40:1에는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도 살전4:8에 성도들끼리 서로 위로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공동체를 세우신 이유 중에 하나는 성도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한편으로 보면 우리 모두 다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위로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두 위로를 달라고만 하지 줄 생각이 없습니다.
서로를 책망하거나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2. 목회자까지 위로를 받게 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가 … 위로를 받았노라”(7)
여기에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울과 실라, 디모데 즉 바울 일행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로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바울처럼 신앙적으로 곧고 바른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울의 이미지는 항상 그렇습니다. 비진리와는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사람,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바울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솔직하고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그의 노년에 감옥에 있을 때에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 4:9-11)
춥고 병고까지 겹친 그 쓸쓸한 감옥에서 그는 따뜻한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에게 위로가 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하지만 바울이 받은 위로는 인간적인 위로가 아니라 목회적인 위로였습니다.
즉, 말해서 그가 목회적인 근심으로 힘들었을 때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상되는 핍박 속에 ‘과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한 짐이었는데 디모데를 통해 듣는 보고는 너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보고를 듣고는 편지 서두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3)라고 기록했습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한 것입니다. 훤히 내다보이는 핍박 속에서도 이런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을 보는 것은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떤 환경과 형편 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켜가고, 해야 할 봉사도 꾸준하며,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을 들을 때 보게 될 때 그것이 바로 목회자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는 여러분의 신앙생활로 목사의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환난에 있는 자들이 더욱 위로를 받게 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7)
바울은 지금 궁핍과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고린도에 있습니다.
그의 고린도에서의 초기 사역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아서 장막을 치는 직업으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형편이 괜찮습니까? 매 한 가지입니다.(1:6 “많은 환난 가운데” *3:4)
바울이 이들에게서 더 큰 위로를 받게 된 것은 자신도 힘든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 역시 힘든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누구에게서 신앙적인 가장 큰 도전과 위로를 받겠습니까? 자신과 같은 환경과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흔들림 없는 신앙생활을 할 때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누구에게 위로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위로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떤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을 굳게 지켜 가면 나도 모르게 나를 통해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세월이 흐른 후에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때 내가 당신 때문에 큰 위로를 얻었노라고.
위로를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①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는지 돌아봅시다. ②나는 위로를 받으려 하는 사람인지 위로를 주는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 ③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 받은 위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나눠 봅시다. 그리고 위로 받게 하는 자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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