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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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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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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소한 실수, 그러나 치명적 실수

성경> 25:24-34

찬송> 84, 412,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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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쌍둥이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야곱과 에서입니다. 이들은 같은 배에서 거의 같은 시간에 나왔지만 이들의 생김새, 성격, 인생, 운명은 전혀 달랐습니다.

야곱과 에서, 중에 장자는 에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중심인물입니다. 그는 언약(약속)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장자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가 장자를 포기했습니까? 그는 후에 장자 자리를 완전히 잃고 난 뒤에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장자가 싫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장자의 복을 잃게 되었습니까?

 

먼저, 장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장자는 아버지의 재산의 다른 아들보다 배나 상속받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형제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조상에게 해 주신 약속의 계승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 외에 특별한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의 우선권이 에서에게 있었지만 그는 결국 장자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언약의 자손에서 탈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왜 에서는 장자이면서도 장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까? 반면, 야곱은 어떻게 장자가 아니었으면서도 장자가 된 것입니까? 이 형제의 이런 운명은 어디에서 갈렸습니까? 그들의 문제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이 집안 생각 외로 문제가 많은 집안입니다. 형제들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쌍둥이 두 형제가 성격적으로도 정 반대였습니다.(27) 부모들도 자식을 자기에게 마음에 드는 아들만을 편애하였습니다.(28) 에서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고 야곱은 아버지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장자가 되지 못한 것은 이런 집안 사정 때문도 아니고, 부모들의 문제도 아니고, 자랄 때 받은 상처 때문도 아닙니다. 집안 타령, 성격 타령, 상처 타령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고 행복하게 사는데 절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이 두 사람, 에서와 야곱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그러면 장자권에 대한 에서의 태도를 통하여서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34절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에서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에서의 마음에 장자의 명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장자라는 것 뭐 그렇게 중요하냐? 장남과 차남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그래 네가 장남해라!’ 이런 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배고프다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장자의 명분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명분을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쉽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실망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 독생자까지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6에는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람은 영적인 간음을 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이렇게 쉽게 생각한 것에 비해 야곱은 그 장자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건 모험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감히 아버지를 속이는 일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야곱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축복을 해야 인생이 복되다하는 것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는 환장을 한 사람입니다. 후에 그는 또 밤에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야곱은 다른 것을 놓아도 하나님의 백성이 복 받는다는 믿음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명분을 생명같이 붙들려고 한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느냐 하면)

2. 죽게 될 것 같을 지라도 그 명분을 내 던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32)

(25: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1)양보해서는 안 될 것을 양보하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에서는 사냥을 하고 온 뒤에 배가 너무 고파서 죽 한 그릇에 넘깁니다. 그 이유가 너무 사소한 것입니다. 에서가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넘긴다고 넘어 가냐? 죽만 받아먹고 언제 그런 일 있었냐고 입 싹 닦아버리면 그만이지!”

그렇다면 야곱 또한 그렇게 해서 장자권이 넘어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이 분명하게 자기에게 장자권을 넘긴 사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장자권을 넘길 때 형 에서에게 맹세하게 했습니다.(25:33) 하나님은 이것을 아주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장자권은 장난으로도 넘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에서는 이 일을 아주 사소한 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사소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도 사소하게 생각하실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에서가 자기가 받을 축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게 되는 시작은 여기에서부터입니다. 그는 여기부터 자신의 장자권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다 보니 우연히 동생에게 장자권을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가 왜 동생 편을 들게 되었는지 그의 아버지는 왜 동생에게 속혀 장자의 축복을 했는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왜 그 모든 과정을 그냥 보고만 있으셨을까요? 하나님이 상황을 보시다가 이건 아닌데 하고 막으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방관하고 계셨습니다. 왜요? 이미 에서가 보여준 태도에서 하나님은 그가 약속의 계승자로서의 자격이 아니라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2)죽기까지 붙들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명분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22)라고 말했습니다. 에서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죽기까지 그리스도인의 명분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은 잠시 잠간이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만큼은 그 어떤 때와 상황에서라도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라도 지켜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너무 쉽게 하나님의 아들 딸의 명분을 넘겨주는 일은 없습니까?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에만 하나님의 자녀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다음 주일에는 교회도 나갈 건데...’ 이런 생각은 에서와 같은 생각입니다.

세상 조금 더 편하게 살자고 장자의 명분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분명한 의식으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축복을 분명하게 누리고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나는 하나님 자녀의 신분(명분)을 실제 생활 속에서 나타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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