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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주 신앙생활의 핵심은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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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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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생활의 핵심은 관계에 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22:34-40

찬송> 268, 304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천년 전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질문을 예수님에게도 던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은 무엇이며 그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을까요?

36절.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예수님의 답은 37-40절.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믿음의 곧 관계

예수님의 답은 한 마디로 말하면 ‘관계’입니다. 무슨 관계입니까? 누구와의 관계입니까?

37절. 하나님을 사랑하라.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39절. 이웃을 사랑하라. 곧 사람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40절.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달려 있다.”<새번역>

다시 정리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관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관계에서 실패하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에 성공하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봉사도 잘하고, 기도 많이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헌금도 잘하고 하면 신앙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외적인 활동이 아니라, 관계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선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 둘째도 그와 같으니(39)

‘둘째도 그와 같으니’의 뜻은 첫 번째 것과 동일하게 중요한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면 두 번째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닙니다.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야 하는 동일 계명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바른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으로 내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확인해 보려고 하면 이웃(사람)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은혜가 되고 감동일 밀려옵니다. 찬양을 할 때에 눈물이 납니다. 기도할 때에 방언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놀라운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웃(사람)과의 관계가 다 깨어진 사람이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우선순위 ‘하나님 사랑’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똑 같이 중요한 계명이면 ‘첫째’와 ‘둘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 둘째를 구분하지 말고 말씀을 하시던지, 아니면 ‘또 다른 첫째’라고 하시던지 해야지 ‘둘째’라고 말씀하신 것은 왜 그렇습니까?

순서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되어야만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웃(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냥 사랑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나가는 것이고, 우리는 지혜가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를 통하여 흘러나가는 것이고, 우리는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이 있고, 내가 지혜가 있고, 내가 능력이 있는 것 아닙니다.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나중에 자신의 며느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역시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전에 그렇게도 혐오하던 그 일을 왜 자신들이 하게 될까요? 사랑은 생각만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아 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선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찬송85장, 4절)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십니다.(37)

이 구절에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첫째 절망감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해야지 다 하는 것인지. ‘다 한다는 것’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둘째 분노입니다. 마음 목숨 뜻을 다 드려버리면 나는 무엇입니까? 내 인생은 무엇이 남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불가능한 듯한 이런 계명을 주실 때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나님의 성품을 말씀하였습니다. 둘째는 이미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는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감이 안 잡힙니까?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나 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미칠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그냥 멀리서 바라보시고만 있는 사랑이 아니라 아주 역동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찾다 찾다가 찾은 단어가 무엇이냐면 바로 ‘질투’입니다. 신4:24에는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투라는 단어가 하나님에게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는 단어일지라도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효과적인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이 사랑을 느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갈 때 하나님과의 관계, 더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관계에 막혀 힘들었던 적이 없습니까? 그때 나의 신앙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말해보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자신의 결단을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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