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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주 신약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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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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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교회

성경> 행2:41-47

찬송> 210, 208


에스겔 47장을 보면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점점 더 많아져 큰 강물을 이루는데, 이 강물이 지나는 곳마다 식물과 물고기가 되살아 납니다. 에스겔은 환상 중에 성전의 회복을 보았고, 이 성전이 회복될 때 일어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을 통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는 교회를 통한 축복이 있습니다.

즉, 교회가 은혜가 있으면 우리가 은혜가 있습니다. 교회가 복되면 우리도 복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설립하신 첫 교회를 보려고 합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설립되고 난 지 2,000년이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교단과 교파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듣고 있는 교단만 해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회, 루터교, 구세군 등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교회를 생각해 보면 우리교회와 재송제일교회와 센텀장로교회가 다 똑 같은 예수교장로회이지만 교단은 고신, 합동, 통합으로 다 다릅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가 옳은 교회입니까? 우리는 그 정답을 ‘성경적인 교회’라고 말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하나님이 본래 디자인하신 교회입니다. 금년 우리교회 표어 ‘신약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교회’는 바로 이 소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의 신도들의 기도모임에서 출발합니다.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교회가 시작되면서 놀라운 대 부흥이 일어나는데, 3천명(41) 5천명(4:4)의 신도수가 증가합니다. 42절에는 이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처럼 마이크나 엠프 시설이 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성도들을 돌보고 관리하며, 사도들은 어떻게 이들을 가르쳤을까요? 그것의 답이 46절에 나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모였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초대교회의 구체적인 형태를 알게 됩니다. 각 집에서, 즉 가정에서 또 모였습니다. 가정교회입니다. 이 가정교회에서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도자들이 다른 성도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 가정교회의 지도자들은 처음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서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가정교회는 오늘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기능의 대부분을 다 하였습니다. 그 가정교회 안에 교제와 기도가 있습니다.(42) 찬양이 있습니다.(47) 구제가 있습니다.(45) 친교가 있습니다.(46절)

그 교회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46)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교회는 전체가 모이는 성전집회와 각 가정에서 모이는 집회가 따로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각 가정에서 모이는 이 집회는 오늘날 우리가 모이는 구역예배와 같은 성격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도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 역시 가정교회 중심입니다.

바울의 전도로 곳곳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는 회당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회당이 교회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회당이란 유대인들의 종교집회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어디에 모였습니까? ‘집’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많은 곳에서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빌립보에서 옷감장사 루디아라는 여자가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후 루디아의 집은 교회가 되어 있음을 행16:40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보면 얼마나 많은 교회가 가정교회의 형태로 존재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골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딤후 4: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각 집은 이렇게 다 교회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별도의 건물 없이 각 가정에서 모여 교회가 되었고 그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의 기능을 다했던 것입니다.

신약교회는 가정교회를 통하여서 그들의 실제적인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서로를 세워 갔던 것입니다. 그들의 가정교회에서의 예배와 교제를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교회에 역사하셨습니다.


●가정교회의 생명력 - 순전한 마음

가정에서 모였던 첫 교회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만 골라서 말하면 46절에 ‘마음을 같이하여’ ‘순전한 마음으로’입니다. 가정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한 마음을 품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순전한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 같이 하나님의 은혜만은 사모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습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정교회 지도자도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지도자는 오늘날의 목사의 역할을 해 내었습니다.

신학적인 문제와 이단 문제, 또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각 성도들을 보살피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로 세워가는 것은 가정교회 안에서 다 해결한 것입니다.


●중국의 가정교회

가정교회의 좋은 예는 가까운 중국교회입니다. 중국교회는 정부에서 인정하는 삼자교회와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불법 기독교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중국 대부분의 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가정교회입니다. 중국의 이 가정교회는 항상 국가의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1949년 중국에서 혁명이 시작되면서 정식 불법 단체로 규정이 되었고 1966년 모택동의 본격적인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과 함께 많은 엄청나게 많은 가정교회 지도자들도 순교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교회는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등소평의 등장으로 개방정책으로 변하자 서구에 있는 많은 교회성장학자들이 중국의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서서히 드러난 중국교회는 엄청난 부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1949년 혁명이 시작될 때 70만 명으로 추산되던 기독교인이 혁명의 40년을 지난 후에는 1,000만명으로 늘어나 있었고 현재는 8천만 명에서 많게는 1억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교회의 힘이었습니다. 이들은 히 10:24-25의 말씀처럼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를 가정교회를 통해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적을 두고 있었던 교회가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싸워 부목사가 입건되었습니다. 대형교회마다 문제가 터지고 있습니다. 교단마다 교권다툼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성경적인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성경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 그 교회를 통하여 흘러내리는 생명수. 그 생명수가 교회와 가정과 성도에게 흘러, 잃었던 것은 회복되고, 죽은 것은 다시 살아나는 교회, 바로 그 교회를 사모하시고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구역예배와 가정교회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봅시다. 성전 예배뿐만 아니라 가정교회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수행했던 신약교회의 모습을 통해 성경적인 교회를 사모하고 회복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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