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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주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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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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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
성경> 시84:1-12
찬송> 209, 210


칼빈은 유명한 그의 책 기독교강요에서 ‘교회는 신앙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것이 어머니의 자애로운 보살핌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건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인 교회가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신자가 있다면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자라난 아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시편 84편에 나타난 어느 한 성도의 애끓는 노래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도는 이전에 성전을 봉사하던 사람입니다.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는 성전의 문지기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 봉사하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지금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마 절기에 맞춰 성전으로 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성전을 향하는 성도의 노래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전에 성전에서 봉사를 했던 한 성도가 성전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이 애절한 노래가 이제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주의 성전을 향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1-4)

이 성도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봅시다.

①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전을 향합니다.(1) ②하나님을 뵙고 싶어 마음에 병이 들었습니다. 주 계신 성전을 얼마나 사모했던지, 마음과 육체가 부르짖노라고 고백합니다.(2) ③하나님의 성전을 보금자리 삼고 늘 성전 안에서 살 수 있는 참새와 제비가 부럽기까지 합니다.(3)

여러분은 이 성도의 마음을 어떻게 보십니까?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까? 보이지도 않는 신을 향하여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입니까? 그러나 이건 거짓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이런 마음은 본 시편 저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의 가슴 속에 이미 체험된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과는 다른, 또 다른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우리의 가슴속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롬1:19에는 하나님을 알만 한 것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전3:11에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칠 때마다 우리가 부르는 고백의 찬송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찬양사역자 고형원 씨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의 이 고백을 즐거워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이 시간은 하나님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42:8에서 하나님은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편 저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항상 주님의 전에 있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이 성도의 가슴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이런 사모하는 심령을 가지고 교회로 나옵시다. 그러면 우리의 심령은 이미 예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2.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5-8)

6절에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의 그들이 어떤 자들이냐면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향한 길이 뚫려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사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 골짜기’로 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향하는 그의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은혜만을 사모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방해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는 일은 우선적인 일이 아닙니다. 내 코가 석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순례길은 혼자 내버려진 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다시 잘 보십시오. 그는 눈물 골짜기에서도 곳곳에서 샘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필요할 때는 이른 비가 내려 메마른 땅을 적셔 먼지가 나지 않게 하고 날씨도 서늘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은 모른 채 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뵙기를 원하는 만큼, 하나님도 그가 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성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눈물골짜기에서 위로의 샘물을, 눈물골짜기에서 축복의 단비를 내려주십니다.(6)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길을 가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전을 향하는 자들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분명히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을 사모하는 일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소용이 없어야 합니다. 사단이 장애물을 놓고 우리를 조롱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그 어떤 장애물도 소용이 없었음을 증명하면서 도리어 사단을 조롱해야 합니다.


3. 성전이 삶의 원천이어야 합니다.(9-12)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그 어떤 눈물골짜기도 이겨낸 이 순례자는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멀리 시온산 언덕 위에 세워진 성전이 눈에 들어왔을 때부터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는 성전을 향하는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그는 성전의 문을 들어섭니다.

9절을 봅시다.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그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합니다. 그에게 성전은 너무나 포근한 어머니의 품입니다. 순례길의 그 고통은 꿈에 본 듯 다 잊어버리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보이는 시간입니다.

이 성도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합니다. 10절을 봅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곳에서 순례자는 다른 어떤 곳에서의 천 날보다 더 나은, 꿈만 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그는 여기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임을 확인한 것입니다. 물론 그는 이곳을 떠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이 성전이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루가 남은 그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 받은 하루 때문에 앞으로 어떤 고통의 세월이 닥쳐올지라도 용감하게 살아갈 담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세상에서 보낸 천 날보다 소중한 한 날입니다. 이 한 날의 은혜를 가지고 세상에서 천 날을 넉넉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능력을 어디에서 받습니까? 성전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전보다 더 사모합니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이런 곳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이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위로부터 놀라운 새 힘과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우리의 삶의 근원이 되어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기자는 주의 성전에 있는 참새와 제비 새끼까지 부러웠습니다.

그곳은 주님이 계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천 날은 의미가 없습니다. 단 하루일지라도 성전에서 하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곳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에 우리의 삶의 터가 있어야합니다. 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이 교회는 나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나에게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헌신과 봉사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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