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6월 2주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6-16

첨부파일

본문

제목>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10-06-13>구역공과

성경> 막11:12-23

찬송> 405, 433


번 주간부터 우리 교회의 교회당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됩니다. 이번 교회당 리모델링을 하고 나면 분명 이전보다는 훨씬 더 나은 공간으로 변모될 것입니다. 리모델링 시공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완공 후 성도들이 사용하게 될 공간들을 상상해 보면 그저 기쁨이 넘칩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이 번갈아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교회 공간 좀 고쳐 놓으면 그것으로 뭐가 될 것처럼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은 큰일이며 큰 기쁨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궁궐 같은 집에서도 마음은 거지같은 사람이 있고, 초가삼간에서도 마음은 임금님 부럽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물보다 사람의 심령이 먼저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입니다. 14절.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이에 대한 결과가 20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 결과가 베드로에게 아주 충격적으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전혀 다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물론 그렇게 기록한 것은 시간 순서상 차례대로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1장에는 이 사건을 본문의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지 않고, 먼저 성전 청결케 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그 다음에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을 기록하고 바로 그 결과까지도 기록하여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저자 마가의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그 당시의 성전의 연관성입니다. 즉 마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성전의 모습이 바로 잎만 무성한 무화과와 다를 바가 없다!’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1.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의 기능입니다.

  여러분 당시의 성전이 어떤 성전입니까? 성경에 3가지 성전이 나옵니다.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 본문의 성전은 바로 헤롯 성전입니다. 우리가 알기에 솔로몬 성전이 가장 화려하고 좋은 것 같지만 사실 그 규모로 볼 때는 헤롯 성전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헤롯 성전은 헤롯 대왕이 자기의 통치권 확립차원에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어준 성전입니다. 13장에 가면 제자들이 이 성전의 웅장함을 보면서 감탄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막13:1) 이 헤롯 성전은 B.C. 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 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 공사는 A.D. 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도 계속 건축 중에 있었던 웅장한 성전이었습니다. 제자들도 그 웅장함에 마음이 빼앗겨 이 성전건축에 사용된 돌을 보라, 또 이 건물을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이 예수님에겐 분노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입니까?

 

  우리가 왜 교회당을 리모델링하려는 것입니까?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더욱 잘 하기위해서입니다.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입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전제사가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제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을 아시는 주님이 바로 이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본래 기능 중에 하나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17절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이 곳이 사람이 교제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선적으로 예배하는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배 장소가 편해질수록 진정한 예배는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있고, 수많은 찬양대원이 있고, 잘 설치된 음향장비가 구비되면서 진정한 예배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더 잘 드러낼 것을 생각했지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모일 공간이 부족하고, 소리도 잘 들을 수 없어 귀를 쫑긋 세워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겨울에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예배를 드리던 때가 훨씬 더 은혜가 있고 성령의 임재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건물을 리모델링하기 전에 우리의 심령을 먼저 리모델링해야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리모델링 후 더욱 심각한 영적 퇴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2. 의식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 외식주의!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와 속이 달랐다는 말입니다. ‘외식주의’에 대한 경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가장 큰 소리로 꾸중을 들었던 부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들을 꾸짖으시며 항상 하셨던 말씀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습니다.(마23:23,25,27) 그런데 이 외식이 어떤 때 잘 생기느냐면, 더욱 익숙해져갈 때, 그리고 더 높은 자리에 세워질 때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외식주의자에 대한 주님의 경고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심각하게 받아야 합니다. 외식주의자는 결국 자신도 실족하고 다른 사람까지 실족하게 합니다.(마23:13,15)

  그러므로 이 외식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연습을 부단히 해야만 합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는 교회를 모르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의 제도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본질에 감격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지! 교회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가 얼마나 거룩한 공동체인지! 이런 것이 항상 먼저 소중하게 다가와야 합니다.

  목회나 신앙생활에 있어 3가지 강조점을 다시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충성과 지혜와 진실!’

충성은 기본입니다.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오직 충성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충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지혜는 때로 간사함이 될 수 있습니다. 창3:1에서 뱀은 간교(간사, 교활)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10:16에서 예수님은 ‘뱀 같이 지혜로워라’고 말합니다. 간사와 지혜의 차이는 그 중심에 진실함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기에 ‘진실함’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외식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정작 주님께서 시장하실 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무화과나무처럼 교회가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고전3:16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자신이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전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전에서 나타내신 예수님의 분노는 어디에도 성전의 주인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주인이 되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의 성전에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계십니까?

자신이 성전임을 알고 우리 자신부터 먼저 리모델링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교회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나 더 우선적으로 성전인 우리 자신의 몸과 심령을 위해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