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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주 다윗의 일생(1) - 하나님의 마음을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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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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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구역공과(10-06-06)-

제목> 다윗의 일생(1) - 하나님의 마음을 사라.

성경> 행13:22

찬송> 410, 356


도들 중에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다윗을 좋아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이유야 제각각 이겠지만 일단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대한 우리의 평가가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그는 자신의 권력으로 충신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비열한 왕입니다. 또한 그것을 덮으려고 우리야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다윗에 대한 판단의 결정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윗은 총 1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들들 중에서 누이를 범하는 아들이 있고, 왕위 다툼으로 서로를 죽이고 심지어는 아버지를 죽이려 한 아들까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식들 교육은 빵점인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결정적인 죄를 지어 큰 징계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나라의 강성함이 자신의 공로인줄 알고 그 위업을 나타내 보고자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께 크게 징계를 받아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이 돌아서 백성 7만 명이 죽게 했던 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은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 한 마디로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왜 다윗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까?

   우리는 다윗의 일생 중의 몇 사건을 통하여 그런 약점을 가진 사람이, 그런 범죄를 했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보여줬던 다윗의 상황과 행동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보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배경이 되는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사울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찾아 베들레헴 이새의 집을 찾아갑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대로 세웁니다. 선을 보는 것입니다. 제일 첫 번째로 본 장남 엘리압의 용모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바로 이 아들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즉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사람은 외모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모를 치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의에 어긋나는 용모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용모에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이거나 용모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을 다 꽤뚫고 계신 분 앞에서는 중심이 중요합니다. 중심이 없이 용모에만 치중하는 사람은 더 가증하게 보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남은 아들들을 차례로 보았으나 하나님의 결제는 나지 않았습니다. 난감했던 사무엘이 묻습니다. “여기 아들들이 다냐?” 막내가 있다고 합니다.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집으로 들어오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다”(삼상16:12) 저는 바로 이 말씀을 두고 바울이 사도행전 13장 22절 말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을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두고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인정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중심입니다. 사람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것만 있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너 됐다!” “너 쓸 만 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게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 나약해져서 자발적으로, 고의로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자세가 있어야합니다. 이런 사람은 죄를 잘 짓지 않을 뿐 아니라, 혹 죄를 지었을지라도 곧 다시 돌아서게 됩니다.


2.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싸움이었습니다.

   삼상 17장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군인도 아닌 소년 다윗이 이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습니까? 그가 이 전쟁터 아버지의 심부름을 와서 보고는 가장 마음이 상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이 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다윗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싸움은 ‘다윗 대 골리앗’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느냐, 거인에게 초점을 맞추느냐’입니다. 다윗이 거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이긴 것입니다.

   골리앗은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힘겨운 모든 세력입니다. 우리는 소년 다윗처럼 초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이긴 것입니다. 왜요? 사실 싸움의 본질은 골리앗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 있느냐 아니냐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태도, 중심이 중요합니다. 이것만 바로 되어 있으면 우리는 이미 승리를 접고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3. 그의 마음(중심)은 성전에 있었습니다. - 은혜를 충전하기 위해 교회를 찾으십시오.

  삼상21:1-6을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한번은 너무 급한 나머지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갑니다. 그때 다윗은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너무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아히멜렉 제사장은 다행히 다윗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영접해 줬지만 다윗 일행을 먹일 음식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급하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아히멜렉 제사장이 생각지 않는 음식을 줍니다. 그것은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성소에 있는 진설병을 준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음식을 먹고 다시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골리앗의 칼을 가지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죽인 장수의 칼을 다시 수중에 넣으므로 백성들에게 이전 사건을 상기시킬 수 있는 중요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쓰러질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질 것 같으면 그 장소가 중요합니다. 다윗이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제사장을 찾아간 것은 우리가 쓰러지려 한다면 어디에 쓰러져야 할지를 말해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쓰러진다면 그 장소는 성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새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무한한 자비와 사랑으로 어루만져주시는 구체적인 장소인 주님의 성전, 교회를 여러분의 영원한 영적 에너지 충전소로 삼아야합니다.


1.2. 마음의 중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이 변하거나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쓸 수 없습니다.

3. 너무 힘이 들어 쓰러질 때, 그땐 교회에서 쓰러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나의 마음의 중심은 어떻게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그래도 힘들 때 당신이 엎드릴 곳은 어디입니까? 간증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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