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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주 나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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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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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나는 아니지요?

성경> 막14:17-21

찬송> 340, 342장


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화형틀 앞에서 한 번이라도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는  “그리스도께서 86년간 나를 부인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그를 부인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22:26을 보면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몹시 근심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9절에는 제자들이 한 명씩 예수님께 묻습니다. “나는 아니지요?”제자들은 불안합니다. 왜요? 자지 자신이 예수님을 필 시림이 될까봐서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게도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까? 예수님에게서 3년간이나 훈련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경험을 다 해 본 사람들이 아닙니까? 아직도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혹시 우리는 이 제자들의 질문하는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지요? 물론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31절에는 베드로도 ‘내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까지 해 놓고서  결국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만 것을 보면 누구도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1. 다른 복음서와 다른 마가복음의 메시지

  제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난 아니지요?”라고 말했습니다.(19) 이에 대해 예수님은 또 다시 분명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열 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20) 이 말은 특정한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릇이란 유대인들이 유월절 예식에서 떡과 쓴 나물 등의 음식을 찍어먹는 식초, 과일 등을 혼합하여 만든 소스나 소금물이 든 그릇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예식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26:25에는 유다가 따로 “나는 아니지요?”하고 물었고 그때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므로 유다를 지목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또, 요13:26에는 떡 한 조각을 찍어다가 유다에게 줌으로써 배반자가 유다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공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마가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자인 것을 분명하게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1)마가복음은 마가가 베드로의 증언에 기초하여 이 복음서를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마가에게 예수님을 판 범인은 바로 유다였다고 말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요13:21-26을 보면, 베드로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이 사안을 생생하게 기억했을 것이고 마가에게 정확하게 전달했을 것입니다.

2)그런데 마가는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아직 주님을 팔 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모두에게 다 있다.’ 사실, 요한복음에는 요한이 예수님께 주님을 팔 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내가 떡 한 조각 주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떡을 적셔서 유다에게 주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범인은 유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13:27-29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마가가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다 기록한 이 범인에 대해 유다로 지목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전과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바울의 제 1차 선교여행에서 그의 삼촌 바나바와 함께 동행 했던 인물이지 아닙니까? 하지만 그는 도중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 자신도 유다와 그렇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2. 나 자신에 대해 더욱 겸손하게 솔직히 답합시다!

  그러므로 누가 예수님을 팔게 될지, 누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례들이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고 충성을 하던 사람이 교회를 안 나옵니다. 이유를 알아보면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주님 때문에 봉사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때문에 한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상하면 결국 믿음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을 전도한 사람이 지금은 신앙을 잃고 도리어 전도대상자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또, 인생의 환난을 경험할 때 우리의 믿음은 위기를 당합니다. 왜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임할 극심한 환난을 말씀하시면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24:13)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남은 일생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21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답을 보면 첫 번째, 두 번째 답과 마지막 세 번째 답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용보다 그 태도가 다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21:17). 베드로는 세 번째까지 동일한 질문으로 물으시자 더욱 신중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씩이나 묻는 의도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에 세 번 부인한 전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를 주님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가 바로 순교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즈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을 때는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니, 근심 중에 대답하는 베드로에게는 순교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매 순간 겸손하게 십자가 붙들고 살겠습니다.’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자세가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을 가질 때부터 그랬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로 결단한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나 안에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지난 한 주 동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명백해집니다. 믿음 없이 살았고, 세상의 정욕으로 마음을 채웠고, 허물과 실수가 많은 우리가 여전히 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 사도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다가올 때에도, 이 모든 일에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하게 이긴다고 고백합니다.(롬8:37) 그리고 그는 ‘연약할 때 강함이니라’고 말했습니다.(고후12:10)

언제 어디서나 나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와 힘을 얻어 믿음의 승리를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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