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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주 삶과 죽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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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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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과 죽음 사이

성경> 삼상20:1-3

찬송> 541, 492


지난 달 26일에 해군 함정 천안함의 침몰 사건이 발생하고 근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계속 이 사건을 접하면서도 지겨워하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는 이유는 변을 당한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는 우리의 젊은이라는 사실이며, 바로 우리의 자식들도 그 가운데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왜 우리나라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는 그 현장을 매일 한 달 동안 계속 지켜보고 있을까요? 한 달 간의 이 비통한 소식을 보고 들으면서 아직 저 일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든가 아니면 그저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에 대해 너무 둔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삶과 죽음 사이는 한 걸음

오늘 성경 본문 3절에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다윗이 친구 요나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3) 죽음이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심각한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다윗은 불행하게도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의 추격 속에서 이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 달 동안 계속되어 온 이 천안함의 사건 속에서 죽음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삶은 그 이후 계속해서 ‘삶과 죽음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아야했습니다. 그는 시23편에서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시55:4)에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라고 말합니다.

임종체험행사가 있습니다. 산 사람이 관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유서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이런 행사가 있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의미있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약4:14에서 말하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는 말씀을 새겨야 할 때입니다.


2. 생과 사는 하나님의 손에

그러나 다윗은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어느 날 그가 자신의 생명을 추격하는 사울 왕을 피해 한 동굴에 숨었을 때에 사울 왕이 그 동굴로 들어왔습니다. 다윗은 이제 꼼짝할 수 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다윗을 발견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안에서 낮잠을 자게 됩니다. 전화위복이 되었고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생명의 위기 상황을 회상하며 이렇게 찬송하였습니다.

시54: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2)또 한 번은 밀고자로 인해 죽음의 위험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시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래서 시편23:4-5절에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

참해 한 마리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이 어찌 참새 목숨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3. 우리의 태도

1)죽음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경건한 자세로 삽시다.

사람은 생명체 중에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7:1-3을 통해 답할 수 있습니다.

 “[1] 명예가 값진 기름보다 좋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다. [2]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좋다. 산 사람은 모름지기 죽는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3] 웃는 것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시름이 서리겠지만 마음은 바로잡힌다.”(전7:1-3)-공동번역

사람이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그만큼 다른 짐승들과는 다른 존귀한 자로서 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거나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와 같습니다.

시49:20“(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2) 죽음의 문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합시다.

죽음 앞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단이 범죄한 인생 앞에 가장 큰 무기로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고 복음의 사명에 투철했던 바울조차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들 때문에 두려워 효과적으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8:9, 고전2:3) 그러나 결국 바울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렇게 호통 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이렇게 명할 수 있는 것은 사망의 문제를 극복한 자의 신앙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부유한 물질과 함께 영원할 것처럼 생각했던 어리석은 부자를 향해 “오늘 밤에 너의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12: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이 오늘 밤에 우리를 찾아오셔서 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우리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부르는 주님의 명령 앞에도 260장 3절 찬송 가사처럼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겠네”라고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인 가진 슬픔의 감정이야 어떻게 하겠습니까만은 사망으로 인해 사탄의 종노릇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승리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을 놓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죽음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나눠봅시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한 우리의 믿음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더욱 담대하게 살 것을 고백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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