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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주 부활의 능력이 지배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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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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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의 능력이 지배하는 삶
성경> 요21:1-14
찬송> 167, 168


부활은 고난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열매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억울하게 억지 누명을 덮어쓴 불쌍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죽음은 아까운 죽음도 안타까운 죽음도, 헛된 죽음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가장 위대한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뒤에, 부활의 놀라운 능력에 감격했습니다. 인생이 가장 두려워하고 비참해지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맞서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고 당당하게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우리 인생이 극복할 수 없었던 가장 큰 문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안 될 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부활을 알면서도 무기력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1절의 ‘그 후에’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라는 말로 대신해도 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자신을 포함한 베드로와 여러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로 갔었던 일을 말합니다.

이들이 왜 갈릴리 바다로 갔습니까? 놀랍게도 이들이 갈릴리 바다로 간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이었습니다.(3.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3년 전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결단하고 배와 그물과 그들의 부친, 가족을 두고 떠났던 그 갈릴리 바다에 다시 어부로 돌아온 것입니다. 예수님 밑에서 3년 동안 받은 훈련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바로 이것이 예수님 부활하셨지만 부활과 관계없이 사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부활 했다는 것과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부활을 능력 속에 살지 못하는 제자들의 구체적인 삶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1)사명을 버리고 생존을 위하여 사는 자로 돌아갔습니다.(3a)

저는 예수님의 12제자들처럼 복 받은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배운 자들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비린내나 맡으면서 일생을 보낼 자들을 예수님이 부름을 받아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이 땅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복 중에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볼 때 제자들만큼 인생 제대로 풀린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고기 낚는 어부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고기 낚는 어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사명을 위해 사는 것과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은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감에 뜨거울 때 집에 쌀이 떨어져도 별로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명감을 잃어버리면 지갑에 돈이 두둑해도 ‘이것 가지고 살겠나?’걱정하며 만족이 없고 불안해집니다.


2)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예수님도 못 알아보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4)

심지어 예수님의 음성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5) 사람이 낙심하고, 이 세상의 일에 얽매이다 보면 진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진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성도와의 관계 속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고 말씀하셨고, 은혜를 잃은 자를 말씀하실 때,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13:13) 고 하셨습니다.


3)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

3절.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주님을 떠난 이들의 삶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공과 안식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이었습니다.

이전에 가졌던 그들의 재주를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바다도, 배도, 그물도 고기도 다 똑 같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바로 그것이 실패의 인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부인하고 세상을 향하여 가면 세상에서조차 버림받게 되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떠나서 잘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서 잘 되는 일은 복이 아닙니다. 도리어 저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떠나서는 잘 되지 마십시오.” “주님을 떠나서는 망하십시오. 주님을 떠나서는 환난을 당하십시오.” 그래야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다시 설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날 우리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부활의 주님을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일에만 얽매여,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닙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의 자리에서 떨어져 세상일에 허덕이며 근심 걱정이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 주님 우리를 용서하소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하지만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밤이 새도록 허탕 친 새벽,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누가복음 5장에서 이전에 경험했던 기적입니다.

요한이 먼저 명령하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7a) 그 말을 듣고 베드로는 바로 해변에 계신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7b)

예수님이 미리 숯불을 피워놓고 생선과 떡을 굽고 있었습니다. 미리 다 준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방금 잡은 생선도 가져오라.” 베드로가 가서 함께 육지에 그물을 끌어올려 그 고기를 세어보니 큰 고기가 153마리였습니다. 이 숫자는 회복을 촉구하는 숫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조반을 다 준비해 놓고 제자들을 초청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12)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식단을 받아먹으면서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12) 제자들 모두 부끄러워 눈을 들 수가 없고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주님의 사랑이 여전한 것을 다시 확신하는 회복의 자리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셔서 내 앞을 상을 베푸시고(시23:5) 나와 함께 먹자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부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부활은 곧 너희의 부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 생명을 지녔기에 그 어떤 사망의 권세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더 이상 부활을 모르는 자처럼 살지 말고 부활의 능력 속에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의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였던 사망을 이긴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삶에 실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서로 나누고, 부활의 능력 속에 살기를 축복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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