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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둘째주 /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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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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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성경> 눅24:1-12

찬송> 167, 162

오늘은 부활의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이들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아직 어두운 새벽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이들은 길을 가면서도 무덤을 막은 그 큰 돌과 봉인한 무덤을 생각하며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른 현장은 돌이 굴려져 이미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더 놀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또 두 사람(천사)이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식을 가정 먼저 듣게 된 사람들은 바로 이 이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이 들었던 부활의 첫 소식에는 이 여인들을 꾸짖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후에 이 여인들은 초대교회에 핵심적인 인물들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지만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자신들이 들었던 이 말을 평생 잊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어떤 경우에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게 되겠습니까? 이 여인들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아봅시다.

1.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에 매여 있을 때입니다.

여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유대의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을 따라온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과정을 모두 다 지켜보았습니다. 23:27에는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 무리 가운데는 이 여인들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사형 집행이 끝났지만 어느 누구도 그날의 마무리를 하는데 주저하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 간 지금, 예수님의 시신을 보고 있는 여인들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살아생전에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지막을 자신들의 손으로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여인들이 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이들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과의 정(情) 때문입니다.

이 정(情)을 무시하거나 무가치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도 믿음의 세월 동안 믿음의 정(신정,信情)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신정도 바른 믿음이 있고 난 뒤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과 우리와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시작입니다. 바로 그 믿음의 가장 기초에 고난과 부활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여인들은 단지 정(情)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주님과 함께 지냈던 그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주님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부활의 온전한 믿음이 없이 주님과 교회를 섬기려 한다면 우리는 여인들처럼 부활의 현장에서도 근심과 걱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부활을 믿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들이 경험해야 했던 두려움과 근심은 소망과 기쁨과 찬양이 되었을 것입니다.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은 기대감으로 설렜을 것입니다. 빈 무덤은 기쁨과 찬양이 되었을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바른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할 때에는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는 자입니다.

2. 말씀이 살아 역사하지 못할 때(기억할 수 없을 때)입니다.

6절.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님은 이 여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부활할 것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7)

이 말은 제자들에게도 세 차례나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잊었습니다. 왜 잊었을까요? 자신의 생각으로 말씀을 받기 때문입니다.(막9:31-32)

여인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말씀하실 때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마음에 그런 생각이 지배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말씀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예 그 말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중하게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정말 가볍게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말씀을 받지 않는다면 천사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처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금주에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이번 한 주간을 살아계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아 헤매면서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매 주일 주시는 말씀을 가볍게 받지 마십시오. 영혼의 무릎을 꿇고 경외함으로 받으세요. 그리고 한 주간을 말씀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구역에서 나누십시오. 또한 그 말씀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3. 부활을 믿지 못할 때입니다.

가장 최악은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을 잊는 것보다 더 최악입니다. 잊은 말씀은 다시 기억나게 해 주면 됩니다. 하지만 말해줘도 믿지 않으면 그것은 아는 것보다 죄가 더 큽니다.

8절에 보니, 여인들은 천사가 일러 준 말을 듣고서는 그제서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장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11절.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이 시대에도 여전히 부활을 이야기하면 허탄한 이야기로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에는 신학자라는 사람들조차 몸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초대 교회에 있었던 불신앙 사조처럼 죽은 자의 부활이 어떻게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함이 아니냐”(막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어떻게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겠습니까? 부활을 믿으면 부활의 능력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하고 죽어도 다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제자들이 부활 전후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했을 때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았습니다. 문을 꼭 잠그고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견디다 못하여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다시 갈릴리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 부활에 목숨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고 그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후 제자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을 믿으며 부활신앙으로 사십시다.

마지막으로 성경에 기록된 부활신앙으로 산 사람의 본문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11:35-38)

더 이상 살아계신 우리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아 헤매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그 능력 속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나는 부활을 확실히 믿습니까? 그 부활신앙은 실제 나의 삶에 어떤 영향(능력)을 미치고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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