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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주 / 춤추는 왕(삼하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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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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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춤추는 왕

성경> 삼하6:1-23(16-23)

찬송> 411, 419

*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이렇게 외치며 고백해 봅시다.
  -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한다.”
     “나는 예배부터 성공할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제대로 된 예배를 드렸는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의 기준은 그 예배에서 내가 은혜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말할 때 내가 받은 은혜가 좋은 예배의 기준이었다면 나는 예배를 드리려 한 것이 아니라 받으려 한 것은 아닐까요?

‘내가 좋으면 하나님께도 좋은 것 아닙니까?’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자녀들의 행복은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처럼 예배에서 우리가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명절에 부모에게 드리는 것은 하나도 없이 부모의 집에서 잔뜩 싸들고만 가는 사람이, “내가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을 기뻐하셔” 이렇게 말해 버린다면 그 자식은 옳은 자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나좋으라고 하나님을 찾으면서 그것을 예배드린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바로 하나님을 예배 한다고 할 때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들에 대해서, 어쩌면 이제까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예배드리기 위해 온 우리들에게 서운해 하신 부분을 공개하시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 왕이 춤을 주고 있습니다. 체통과 체면 권위가 중요한 왕이 볼썽사납게,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추태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몸에서 옷이 벗어진 것도 모른 채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언약궤가 자기의 성으로 들어오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춤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춤으로 인해 생각지 않은 두 사람의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그 한 사람은 언약궤를 나르던 책임자였던 웃사라는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이 기쁨의 주인공인 다윗 왕의 첫째 부인이 미갈이라는 여인입니다. 제사장 웃사는 언약궤를 나르다가 즉사해 버리고, 왕비인 미갈은 불임의 저주를 당하게 됩니다. 어찌 이런 경사스런 일에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다윗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두 사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 예배의 실패자 웃사

언약궤 운송의 첫 번째 계획이 시행됩니다. 그 일은 제사장 웃사가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을 동원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운반행렬 앞에서 찬양을 하였습니다.(5) 그런데 언약궤를 실어 나르던 수레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이 수레와 함께 걸어가고 있던 제사장 웃사는 위험한 순간인 것을 알고 언약궤를 손으로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곧 바로 웃사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웃사가 죽은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7) 이 일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다윗 왕입니다. 축제가 한 순간에 초상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웃사는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1)웃사는 제사장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궤를 운송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어떤 방법으로 운반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들이, 그것도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어 이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사는 수레에 실어 소들이 끌도록 했습니다. 그는 더욱 세련되고 쉬운 방법으로 언약궤를 운반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미 언약궤는 블레셋 족속들에 의해 소들이 끄는 수레에 의해 운반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6장)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혹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마저 하나님은 함부로 취급당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법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을 때 그것을 하나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기시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제발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지 맙시다.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2)웃사는 분명 책임감은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는 언약궤의 운송 책임을 맡고는 한 순간이라도 여호와의 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들이 뛰기를 시작했고 언약궤는 곧 넘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바로 언약궤를 붙잡았고 그 행동으로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정상을 참착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사는 죽었습니다. 그 말은 그 어떤 이유로도 언약궤를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웃사는 하나님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사고 직전 그는 하나님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넘어지거나 곤두박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웃사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웃사의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무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앞서서 찬양을 하는 다윗과 백성들처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했다면, 예배에만 집중했다면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났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배 시간에는 오직 예배 밖에 없어야 합니다. 웃사처럼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예배를 위해 섬긴다고 하는 봉사조차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2. 예배의 실패자 미갈

그러면 미갈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언약궤의 운송은 중단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10)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머물러 있었는데 오벧에돔의 모든 집안이 다 복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다윗은 다시 용기를 얻습니다. 그는 다시 언약궤를 가져올 시도를 합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잘못된 부분을 철저히 파악하여 제사장들, 레위 자손들을 동원하여 율법에 명시된 그대로 언약궤를 운반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다시 춤을 춥니다.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언약궤의 행렬을 다윗의 부인 미갈이 처소에서 내려다보다가 춤추는 다윗 왕을 보게 됩니다.

16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은 이날만큼 행복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축복하려고 하였습니다.(20) 들어오는 순간, 그의 아내 미갈은 다윗에게 일갈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20b)

하나님은 남편 다윗 왕에 대한 미갈의 이 비난 때문에 그녀의 태의 문을 닫으십니다.

미갈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남편에게 부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일 것 같지 않습니까?

미갈의 잘못은 다윗의 대답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21절.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 앞에서! 다윗의 춤은 찬양이었습니다. 예배이었습니다. 그 예배 시간에 체면이며 체통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너무 좋아서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바라본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갈의 비난은 예배를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배 중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십니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언약궤를 모셨으며 그 하나님에 대한 사무치는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렸음에도 공허할 때 우리는 스스로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에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부름을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1. 나는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2. 내가 바른 예배를 위해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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