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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째주 / 절대 믿음, 절대 인내(마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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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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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절대 믿음 절대 인내

-성경> 마15:21-28

-찬송> 270, 488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시는 경우를 볼 수 있고, 어떤 사람의 경우는 예수님도 감탄하실 정도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어 극찬하신 일도 있습니다. 눅7:9에 보면 자신의 하인의 질병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 백부장을 향해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28절에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 여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이 인정할 만한 큰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필요한 것입니까?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딸이 귀신이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요청합니다.(22)

여인이 하는 말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들리는 말은 ‘흉악하게 귀신 들렸다’는 말입니다. 이 여인은 가련한 딸의 인생의 짐을 자신이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여인의 믿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기에 예수님이 이렇게 탄복하신 것입니까?

1. 절대 믿음입니다.

절대 믿음은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자신의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1)본문의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은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22) 본문에 ‘소리를 질러’라는 말은 한 번 소리를 지른 것을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 지르는 것을 의미하는 시제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들을 때까지 아니, 반응을 보일 때까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이 소리가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았는지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23)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일단 제자들이 자신들이 나서서 이 소리 지르는 여인을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아마 제자들은 여인을 대면해 보고 자신들이 이 여인을 제지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이 지금 예수님에게 나오는 태도입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예수님에게로!’ ‘내가 오직 그를 대면하리라!’라는 생각뿐입니다.

2)이 여인의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23) 이렇게 계속 부르짖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반응은 예수님이 보여준 이제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제까지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사람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가신 분이 아닙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여기에서 이 여인은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소문으로 들었던 예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로 실족을 해도 보통 실족할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여인은 예수님을 바라고 있습니다. 왜요? 절대 믿음, 오직 예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3)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는 여인의 믿음에 절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직접 대면할 기회를 잡은 여자는 예수님께 절하며 자신을 도와 달라고 직접 요청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25)

예수님을 만나기를 고대했고, 이제는 만나게 되었다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바로 그 분 앞에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애원합니다.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온 예수님으로부터 듣는 답은 하늘이 무너지는 답이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

여기에서 자녀는 누구이며 개들은 누구입니까? ‘자녀’는 이스라엘 백성인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고, 개들은 이방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는 유대인의 용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쉽게 말해, “내가 능력을 베풀어도 나의 백성인 유대인을 위해서 베풀지 너 같이 개 같은 이방인들을 위해서는 베풀 그 어떤 능력도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믿었던 분으로부터 직접 받게 되는 멸시, 모멸감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백이 여인으로부터 나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주여, 자녀 취급 해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개면 어떻습니까? 그 주인의 집에 있기만 하다면야. 그리고 그 개는 주인의 상의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습니다. 그 은혜가 나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절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절대 믿음입니다. 다른 그 어떤 것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믿을 이는 오직 주님 예수 밖에 없습니다.

 2. 바른 믿음

이 여인이 이런 절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인의 믿음이 정확하고 바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을 포기할 수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방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자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22)

‘다윗은 자손’이라는 말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 구원자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어 여인은 한 단계 더 발전한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주’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5, 27) 이미 이 여인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자신을 구원할 분이시며, 더 나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도록 드릴 ‘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까? 우리의 구원자이십니까? 그리고 그 분은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까?

절대 믿음은 바른 복음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릇 복음에 절대 믿음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썩을 면류관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를 위하여 열심을 내는 자가 됩니다. 오늘날의 많은 이단에 목숨을 걸고 충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3. 절대 인내

예수님이 이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은 이 여인에게서 ‘절대 인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이 여인에게 실족할 기회는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향해 개처럼 취급하며 말할 때에는 이제 이 여인에게 더 이상의 믿음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여인은 인내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절대 믿음은 절대 인내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인내함으로 증명해 보여야합니다. 우리가 인내한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변치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절대 믿음과 절대 인내를 보시고는 “여자여 내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님은 절대 믿음 절대 인내의 소유자를 찾으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주님을 감동시키고 주님으로부터 믿음의 인정을 받을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주님께 대한 절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절대 인내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현 상태를 나누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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