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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둘째주 / 광야학교2(눅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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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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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광야 학교(2)
- 성경> 눅4:1-13
- 찬송> 343, 342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주기도문’을 주셨습니다.(눅11:1-4) 그 기도에는 시험을 들지 않기를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이 이 광야 시험에서 어떻게 이기시는지를 보면서 우리도 승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 시험의 시점 - 은혜의 때에 오는 시험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 광야로 들어가실 때의 정황을 생각해 봅시다. 그때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였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력하게 확신하게 된 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려주심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직접, 구체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시험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끼고 체험한 직후에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시험에 우리는 적지 않게 당황하게 합니다.

이때의 시험은 곧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미 이 학교에서 이 과정을 정상적으로 수료한 사람들 ‘시험과 시련의 거친 파도가 우리의 인생에 예상치 않게 찾아오더라.’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파도의 원인까지 신속하게 파악합니다. 그리고는 이 파도에 허우적대지 않고 바로 이 파도를 타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상치 않게 우리에게 강요하듯 입학하게 되는 광야학교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배워야 할 것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고 맞이합시다. 그러면 얼마 후 시험과 시련의 거친 파도라 할지라도 파도타기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파도 때문에 더 빨리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2. 시험의 핵심 - 현실 문제

마귀의 시험은 아주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말은 마귀가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바로 그것으로 시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이 결코 만만한 시험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이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드러난 것만 세 가지이지 그 외에 얼마나 많은 시험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4:1-2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성령에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은 40일 동안 주려가시는 가운데 마귀에게 이런 저런 시험을 받았지만 그 모든 시험이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제 마지막으로 마귀는 결정적인 무기로 무장하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단 마귀였습니다. 그는 이미 죄도 몰랐던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까지 미혹하여 범죄 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가 다시 감히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마귀 그가 예수님께 내민 카드도 보통 카드가 아닐 것입니다. 사단 마귀 그는 어떤 카드를 내밀었습니까?

그가 내민 첫 번째 카드는 우리가 아는 대로 돌이 떡덩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이 사단이 내민 결정적인 카드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예수님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육체를 가지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픈 것이면 예수님도 아픈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든 것은 예수님도 힘듭니다. 예수님은 지금 인간이십니다.

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도 할 수만 있다면 떡으로 변하게 해서 먹어야 하는 때입니다. 이것은 인생으로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바로 당장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돌을 떡으로 만들 능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험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라는 심각한 시험 앞에 놓일지 모르는데 그때 넌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시험입니다.

그러면서 마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답이 뻔하지 않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못 하겠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냐?”

과연 그럴까요? 그래야만 할까요? 인간인 이상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첫 발을 내딛으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에는 떡 대신에 우리가 더 우선적으로 취할 것까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우리 모두 “아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도 사단 마귀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야, 너 어떻게 먹고 살려고? 신앙으로? 좋아하시네. 신앙이 너 밥 먹여 주냐?”

여기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 신앙이 나 밥 먹여 줍니다.”라고 답해야 합니다.

이러면 마귀가 겁을 팍 먹습니다. ‘야, 이게 보통이 아닌데’ 하며 꼬리를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믿고 가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땐 그 다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밥 안 먹여줘도 관계없습니다. 난 그래도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러면 사단 마귀는 완전 녹다운(knockdown)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신앙고백이지 않습니까?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개역)

 3. 떡이라는 현실을 극복하는 믿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의 떡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오히려 떡이 필요함을 전제로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씨름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떡으로만’ 살 자는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부분의 생활은 여전히 ‘떡으로만’ 살 자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 학교에서 받은 첫 시험에서 한 판 승리를 하신 예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비록 현실감이 좀 뒤떨어지는 것처럼 오해되기는 하지만, '말씀대로' 우직하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 세상을 거꾸로 살아간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 지금 배가 고파서 당장 돌덩어리를 떡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도 그 떡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린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사단 마귀가 시험하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서로 진솔하게 나눠
보고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해 서로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하고 구역장이 마무리 축
복기도를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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