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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넷째주 / 세가지 본향(히1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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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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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제목> 세 가지 본향 - 천국 신앙의 회복

- 성경> 히11:8-16

- 찬송> 438, 49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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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설 명절을 잘 보내셨습니까?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귀성(歸省)전쟁을 치렀습니다.

왜 사람들은 고향으로 갈까요? 답은 쉽습니다. 그곳이 고향이니까!

어떤 분이 고향을 찾은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첫째, 귀소본능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둘째, 안식본능입니다. 쉬고 싶은 욕망입니다. 고향을 떠나 나그네로 사는 삶의 고달픔을 고향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셋째, 영접본능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에 가면 내 부모나 형제가 반겨줄 것을 기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의 고향은 단지 태어난 곳이라는 말로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보니 야곱은 애굽 땅에서 죽으면서도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고, 그의 아들 요셉도 애굽의 총리까지 되었지만 죽을 때 유언하기를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다시 들어갈 때 자신의 시신을 함께 가져가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육신을 가진 각 사람에게 명절 때가 되면 찾아가는 고향이 있듯이 이 땅을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찾아야할 고향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도 본향 찾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4)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13절에 “이 사람들은”) 이들은 믿음의 3대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8-9절) 이들이 찾는 진짜 본향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본향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나온바 본향’입니다.(15) 둘째는 현재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입니다. 셋째는 더 나은 본향입니다.(16)

먼저, 나온 바 본향입니다.(15) 나온바 본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나온 바 본향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갈대아 우르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그러나 이들이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천국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천국 믿음을 가졌다’ 이 말에 동의를 하십니까? 성경이 증언해 주는 바 아브라함이, 아니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까지 모두가 다 천국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그곳이 그들이 영원히 살 곳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들은 가나안 외에 진정으로 그들이 가야할 본향이 또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이 믿음의 3대 족장들이 얼마나 철저한 천국 신앙으로 살았는지, 즉 육신의 정(情)까지도 믿음으로 극복하면서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던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천국을 사모하면 살았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1. 이방인처럼 살았습니다.(9-10)

9절에는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 왔으면서도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거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가나안 땅에서 이방인처럼 살았다는 말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왔으면 이제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 생각을 해야 할 터인데 왜 그렇게 살았습니까? 10절에 그 이유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으니 이방 사람처럼 사는 것이 당연하지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조카 롯과 초목지가 부족하여 분쟁이 일어날 정도로 많은 소와 양떼가 있었습니다. 또 창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집에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후반기의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부자가 되었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제까지 믿음으로 산 결과 드디어 부자가 되었으니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이다. 이제 이 약속의 땅에서 땅도 사고 집도 사고하여 이 약속의 땅에서 복 받은 증거를 나타내며 보란 듯이 살아야지!”

그러나 그는 약속의 땅에서도 외방에 거하는 것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왜요? 그것은 아무리 잘 살아도 이곳이 천국일 수는 없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 따로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2.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9하)

사람이 돈이 있으면 먼저 해결하고 싶은 것이 의식주 문제입니다. 먹고 입는 것이 해결되면 그 다음은 집에 대한 욕심을 내게 됩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믿음의 족장들은 장막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장막 생활이 무엇입니까? 텐트치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웬 텐트입니까? 텐트는 쉽게 치고 쉽게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제 곧 이사해야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사서 재 놓지 않습니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이사할 곳에 이것이 적절한지를 생각합니다.

아는 목사님 한 가정이 선교사로 헌신을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가재도구를 사는 것은 없고, 계속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사할 사람은 짐을 많이 만들지 않는 법입니다. 천국에 갈 사람은 천국의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여러분에게 ‘네 장막을 거두고 이제 오느라’하고 말씀하시면 미련 없이 주님께로 갈 수 있습니까? 세상의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고 떠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세상에 투자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다가 롯의 아내처럼 되는 것입니다.

3. 이방인으로서의 증거를 나타냈습니다.

13절에는 이들이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을 했다는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증거하며 살았다고 말합니다.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증거하였다’는 말은 표시를 내고 다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스스로 이 땅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외국인입니다. 나는 나그네입니다”하고 말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스스로 그 말에 책임지는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 스스로 이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가끔 자신이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믿는 사실에 대해 행위가 따르지 않으니 자신 없어 부끄럽다는 말이며, 또 둘째는 예수 믿는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나는 예수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을 분명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며 또한 그 예수 믿는 것이 좋다는 것의 고백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천국 시민이 너무 좋아 사람들에게 말하며 살았고, 또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16절에서 그들이 천국을 지향하는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성도 여러분, 천국이 이 세상보다 더 나은 본향임을 믿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 자신이 이 땅에서 어떤 것을 누린다고 하여도 천국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는 자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16) 바꾸어 말하면 자랑스럽다는 말입니다.

고향을 생각하게 되는 설 명절을 지내면서 우리의 영적 본향인 천국신앙을 다시 점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주님 재림과 함께 천국 대망 신앙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각 자 천국 대망 신앙이 얼마나 있는지를 살펴보고 천국신앙을 희미하게 만드는 요소를 두고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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