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교회채널
 가정교회360
 예배생방송

사역의 지경이 넓혀지는 교회

목장자료실

1월 셋째주 / 로마를 넘어 땅 끝까지(롬15:22-3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9-01-21

첨부파일

본문

-제목> 로마를 넘어 땅 끝까지
-성경> 롬15:22-33
-찬양> 502, 505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 66권의 내용을 요약하여 두 단어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메시지는 여기에서 마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이 땅에서 구원자 그리스도로 오셨지만 그것을 전파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0:14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파하는 사역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며 마지막 지상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까지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대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아직도 극형을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에 대하여 정죄하고 있을 그 때에 제자들은 “너희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우리 예수님이 바라보셨던 비전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의 비전은 땅 끝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땅 끝의 비전을 가지고 일생은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는 물질뿐만 아니라 그의 지식을(학문을) 내걸었고, 그의 젊음과 열정을 내걸었고, 그의 육신을 내걸었고, 그의 남성됨도 내걸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바울은 천국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사명을 위하여, 땅 끝 비전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였습니다.(마19:12)

1. 여러분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 ‘오직 서바나 - 오직 땅 끝.’

본서 로마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시에 고린도에 머물면서 쓴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로마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적인 그릇된 신앙을 깨닫게 하여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오늘 본문 23-24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고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이 두 가지 목적 가운데 어떤 목적인 바울에게 있어 더 중요한 목적이었을까? 둘 다 중요한 목적입니다만 바울의 여행의 의도를 생각할 때에 두 번째 목적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2,3차 전도여행의 목적 중에는 복음을 이미 전했던 지역을 다시 순회하면서 성도들과 교회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차-행15:36; 3차-행18:23) 그리고 또 바울의 선교 원칙은 다른 사람이 바로 15:20에 ‘남의 터’위에 건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미 복음이 들어가서 교회까지 형성되어 있는 로마를,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도 않은 로마 교회를 방문한다는 것은 그의 선교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볼 때 그가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는 의도는 다름이 아닌 ‘서바나 비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입니다.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이고 스페인은 그 당시 로마 중심의 세계에서는 땅 끝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가슴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이 그의 가슴에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의 가슴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러 번 로마를 방문하려고 시도했었지만 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22) 왜 그랬을까요? 그곳이 서바나로 가기 위한 중간기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가슴에는 주님의 땅 끝 비전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땅 끝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가슴 속에는 주님의 비전이 있습니까?

이 비전은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명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남성됨까지 주님을 위해 바친 사람이 지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풀빵을 하나 팔아도 우리는 주님의 비전 때문에 팔아야 합니다. 이것 팔아서 나와 내 자식들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면 아닙니다. 이것 팔아 내 자식들 먹여 공부시키고 사회에서 제구실하게 만들어(여기까지는 그래도 됐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치면 안 됩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살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팔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일 낮 메시지의 짐 엘리엇과 젊은 다섯 선교사의 아우카 부족 선교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의 순교 이후 그들의 부인들이 순교한 남편들의 선교지로 들어가 결국 그 부족을 복음화 시킨 이 놀라운 사건은 복음의 열정과 우리에게 주어진 땅 끝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있습니다.

2. 가는 선교사가 있으면 보내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 “너희가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렇게 선교사로 헌신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가는 선교사가 있으면 보내는 선교사가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주님의 비전으로 가슴이 타야 합니다만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가고 또 어떤 사람은 보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3-2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또…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은 본래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였습니다. 바울은 지금으로 말하면 안디옥 교회의 목사님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급성장하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어느 날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이 교회에 선교사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두 사람을 지명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교회의 핵심인물인 바나바와 바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누가 선교사를 보내야 하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가 바로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선교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의 선교로 많은 교회가 설립이 되었고 그 교회들 가운데는 자립을 하고, 또 바울의 사역을 물질로 구체적으로 돕는 교회가 있었고, 모체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다는 소식을 듣고 구제금(연보)을 보내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선교는 교회의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로마교회에 당당하게 요청합니다. 너희들이 나의 땅 끝 비전에 동참하고 나를 보내 달라고 말입니다.

‘보내 달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혼자 가면 되는 것(자비량 선교) 아닙니까? 선교에는 물질이 따릅니다. 선교사들은 자비량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자비량 선교사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자비량 선교를 하면서도 때로는 자비량 선교가 선교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온전히 복음에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필요하면 자비량 선교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후원하고 자신이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것을 알기에 로마교회에 이 일에 동참하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3. 선교는 축복입니다.(28-29)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이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바울의 말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너희가 나를 스페인 선교사로 파송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복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바울이 당당하게 로마교회에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이유도 선교가 축복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자신의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준 것을 감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빌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복음을 위해 드리는 물질은 절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1. 금년에도 선교사역에 풍성한 물질과 기도가 전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설 명절의 영적인 강건함과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장산교회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