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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다섯째주 / 하나님의 사랑(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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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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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사랑
-성경> 롬 5:8
-찬송> 279, 278

☞ 들어가기 전에, 지난 주일 낮예배 시에 보았던 영상을 기억하십니까?
   
그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것을 한 가지씩 말해 봅시다.

영상 맨 마지막에 나온 성경구절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누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아들의 죽음으로 드러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며,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1. 그 사랑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나타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이 말은 우리가 이전에는 죄인이었는데 지금은 ‘의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전에도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인입니다. 우리 가운데 죄인이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군이었던 다윗 왕은 자신의 왕권을 이용하여 신하의 아내를 취한 간음죄(간통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를 회개한 그의 기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간음(간통)죄를 회개하라고 했더니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간음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의 근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났으니 죄를 좋아하고 죄를 짓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또 범죄하게 되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다윗만의 고백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다 죄인입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는 죄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인인 것을 알까요? 모를까요? 다 압니다. 그러나 모른 체하는 것입니다. 아닌 척 하는 것입니다. 왜요?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 앞에 취하는 태도는 이런 것입니다.

⑴좀 더 철학적이고 생(生)을 진지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道)를 닦습니다. 금욕적인 생활도 하고, 수련도 하고, 고립되고 격리된 생활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면 이 죄 문제가 해결될까요? 1993년에 타계한 불교의 거성인 성철 종정은 바닥에 등을 대지 않는 장좌불와 10년과 자신의 거처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자신도 나가지 않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 동구불출 20년의 수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열반송)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아무리 도를 닦아도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⑵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답도 없는 그 일을 접어둔 채 그냥 열심히 살려 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그 열심히 산다는 미명 하에 이 땅에는 속고 속이고, 물고 물리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수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현재를 열심히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칭찬하고 격려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더욱 죄짓게 만들고 또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덮고 살자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겁한 인생의 위선입니다.

잠언 14:12에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씀합니다.

2. 그의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하여 나타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4:9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이 죽으신 분이 누구인지 좀 더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인간을 사랑했다고 해도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 사랑하는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잘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가 아무 상관이 없는 관계로만 설정을 해 놓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른 나라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 됐기는 하지만 금방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웃이 죽게 되었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안타깝지만 그것도 ‘어떻게 하겠나?’하고 넘깁니다. 결국 남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서 죽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좀 문제가 달라지지요? 그런데 그게 나의 자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리고 싶습니다. 방법만 있다면 억만금의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아니요, 나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는 일이 있더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까? 예, 그것을 다 이해하기에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컸고 그것에 비해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는 겁니다. ‘우리를 사랑한다고 한들 어떻게 아들을 죽일 수가 있나?’라고 말할 정도의 사랑이 나를 향해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죄를 짓고 도망치다가 어느 부자 집에 종살이하면서 숨어 살고 있었다고 칩시다. 범죄자를 찾는 형사가 집을 덮쳤습니다. 그때 난 신속히 숨었었는데 집안이 조용해서 나와 보니 내 대신에 주인이 자신의 아들을 죄인으로 대신 줬더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이해가 안 되죠. 그런데 그렇게 했더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 앞에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사실 앞에서 만큼은 더욱 진지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 당신 앞에 어떤 존재입니까? 내가 뭐 길래 이렇게 사랑하셨습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이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스도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죄의 고통과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하셨던 고난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왜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에게 외면을 당했습니까? 그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아들로서의 버림당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우리가 이 시간에 십자가를 통하여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살다가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가져다 준 모든 악한 열매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미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 사랑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1) 혹시 아직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영접합시다.(구역장이 기도해 주실 것)
    2)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자녀로서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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