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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셋째주 / 영혼의 추수(요4: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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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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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영혼의 추수

-성경> 요4:34-36

-찬송> 589, 495

우리는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지켰습니다.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는 수장절(혹은 초막절)입니다.

출34:22에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수장절은 분명 세말(歲末), 한 해의 마무리를 하면서 드리는 감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주일은 한 해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절기가 추수와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추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있겠습니까? 영혼의 추수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해의 마지막에 곡식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면 오늘날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물질의 감사뿐만 아니라 영혼의 추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더욱 명확해집니다. 35절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께서 지금 추수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전도하였고 여인은 메시야를 만났다며 마을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그 전도의 열매를 경험한 예수님은 곡식이 익어가고 있는 밭을 보시면서 비유적으로 영혼의 추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2008년이 다 가기 전에 추수감사주일이 들어 있는 이 11월에 영혼추수를 위해 ‘500고지 점령 영혼 대 추수 작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주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시다.

1. 영혼을 향한 절박한 심정입니다.(34)

34절에는 예수님은 전도가 양식이라고 합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사마리아의 수가 성의 여인의 전도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간 사이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 와서 예수님께 드리면서 “랍비여 잡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32)

여기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 무엇이며 ‘그의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 구원 받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자신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배가 고프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배가 좀 고프더라도 전도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 강조하시려고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말씀을 그대로 받읍시다. 예수님에게 있어 전도가 식욕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감정에 큰 변화가 왔던 것입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큰 기쁨이 배고픔을 이기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복음서 곳곳에서 이런 기쁨에 대해 진작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세 가지의 잃은 것에 대한 비유 - 잃은 양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잃은 아들 비유 - 에서 그 잃은 것을 찾고 난 뒤에 한 결 같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면 바로 ‘잔치’입니다. 기쁨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정도는 그 사건의 절박함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예수님이 배고픔을 잊으셨다는 것은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얼마나 절박한 사안이었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영혼에 대한 간절함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마음을 닮기를 소원합시다.

2. 구원의 시급함입니다.(35)

35절 하반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밭을 보라”(35b)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 바로 앞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35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그 때가 시기적으로는 추수할 때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실제 추수 시기는 넉 달이 남아 있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추수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눈을 들어 밭을 보라!”라고 하실 때에 눈은 어떤 눈을 말합니까? 영적인 눈입니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보면 영혼의 추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육적인 눈으로 보면 아무 일 없는 것 같아도 영적인 눈으로 보면 문제투성이 인생을 볼 수 있습니다. 남편 회사 잘 다니고 자식들 공부 잘 하고 아내 집안 일 충실하고… 이런 집안 잘 없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영적인 시선으로 보면 지금 시급하게 구원을 받아야 할 자라는 말입니다.

회사를 잘 다니면, 돈을 잘 벌면 천국갈 수 있습니까? 자식들 공부 잘 하면 천국갈 수 있습니까? 사람 인격이 좋으면 천국갈 수 있습니까? 이런 것에 속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은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의 영혼의 만족이 없습니다. 나병이라는 질병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겉으로 장군의 복장을 하고 다니는 나아만 장군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한 여종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의 여주인에게 “나의 주인이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왕하5:3) 이 한 여자 아이 하나로 이 나아만 집안은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눈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시급하게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3. 빚을 갚아야 하는 심정입니다.(36)

36절에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다고 합니다. 무슨 삯입니까? 이미 복음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다 복음에 빚을 진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롬1:14)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괜찮은 인생일까요? 바울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명문가 출신이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불행한 인생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명문교를 나왔으니 예수 안 믿는다고 해서 역시 형편없는 인생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계속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그는 여전히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넘기는 일에 충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명문가, 명문학교 출신이면 뭐합니까? 돈 잘 벌면 뭐합니까? 권세가 있으면 뭐합니까? 결국 예수님 대적하는 일을 할 것인데요.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예수 믿는 사람 욕이나 하고, “예수 믿지 말라, 예수 믿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 그것보다 조금 낫다면 예수 믿는 일에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우리 인생이 복된가 말입니다. 예수 믿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요?

우리는 이 은혜와 복을 왜 받았습니까? 복음을 전해준 전도자들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을 교회로 인도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예수 믿게 인도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에게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갔는데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할 짓은 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후안무치한 사람은 아닙니까? 그렇게 큰 복음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적이 없다는 듯이 얼굴 두껍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복음의 빚을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갚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때는 혹 모르지만 적어도 교회가 함께 일어나 복음을 전하고 이렇게 ‘500고지 점령 영혼 대 추수’라는 말을 쓰면서 힘을 하나로 모을 때만큼은 미친 듯이 전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절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 될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이번에 작정하고 홀리데이에 교회로 초청해 봅시다.

그날은 그 영혼을 위해 거룩한 날, 홀리데이(Holy Day)가 될 것입니다.

홀리데이 초청자 작정을 하셨습니까? 아직 못했습니까? 나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구역과 개인이 이번 행사를 위해 연합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서로 나누고 그 일의 능력을 위해 함께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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