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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넷째주 /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었습니다.(롬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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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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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제목>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 성경> 롬4:17-25

• 찬송> 370, 545

로마서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즉, 믿어 의에 이르고 시인을 통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믿어서 바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믿어 의롭게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이신득의’, ‘이신칭의’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롭게 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이방인은 선한 공로의 행위이고, 유대인은 혈통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어날 때부터 선택된 백성으로 태어났으니 구원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의 증표가 바로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4장입니다. 특히 바울은 아브라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에서 믿음을 보였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어떻게 의로 인정하셨는지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18)

먼저 아브라함이 무엇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고 믿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8b)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에 대해 처음 약속하셨을 때는 창세기 12장입니다. 그땐 그의 나이 75세 쯤 일 때였습니다. 본문 18절의 약속은 5년 정도가 지난 80세의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들을 보이시며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창15:5)고 해 주신 약속입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아들 하나 없습니다. 19절을 보면, 설상가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의 몸은 이미 아기를 낳기는 불가능한 몸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놀림을 당하는 느낌이 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지금은 손자 같은 늦둥이라도 재롱떨고 있어야 하는데, 어디 그런 아이들 하나 얼씬 거리지도 않는데 언제 하늘의 별과 같이 된다는 말입니까?

무엇을 바랄만 해야 바라지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바라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은 이런 형편, 상황에서도 바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믿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자기가 처한 형편, 상황은 믿을 것이 하나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만 보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7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성도 여러분,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믿음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구원 받는 믿음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봤습니까? 천국을 봤습니까? 아니면 2,000년 전의 예수님을 봤습니까? 그 분의 십자가를 봤습니까 아니면 부활을 목격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보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만든 것입니다. 24절을 보세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절을 봅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 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은 보지도 못했는데 그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부활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에 모든 것이 다 이해되기 때문에 믿는 것 아닙니다. 다 이해가 된다면 여러분은 설명을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설명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설명을 못해도 믿는다는 말입니다. 이것 정말 신비입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은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믿음이 크든 적든 간에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만으로 기적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랍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었고 우리도 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은) 점점 더 확신으로 향하는 믿음입니다.(20-21)

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백세에 자신도 자신의 아내 사라도 몸이 죽은 것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몸이 죽은 것과 같다는 말은 생산의 능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그렇게 알았다고 합니다.(19) 그런데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이 실제로 의심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몇 차례나 말입니다. 창15:2-3절을 읽어보세요. 그는 자신의 종의 아들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을 작정이었습니다. 또 창17:17-18절에는 약속을 믿지 못해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생각합니다. 이것 다 의심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브라함이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의 의미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 의심을 극복하고 더욱 견고하고 확신으로 향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19-21절을 봅시다.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의심하지 않고...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3-24절을 보면, 이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똑 같은 햇살을 받아도 진흙은 굳어지고 왁스는 녹아내립니다. 우리에게 의심의 그림자가 덮기 시작할 때 진짜 믿음을 가진 자는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가짜 믿음은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으이 유명한 설교자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어느 의미에서는 자신의 의심을 극복하고 그 의심에 대하여 계속 대답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심이 찾아올 때 그 의심 때문에 믿음을 잃는 자가 아니라 그것까지 믿음으로 이겨내고 더욱 견고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얻을 때까지 약 25년을 말도 못하게 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 되는 거야? 아닌 거야?” 심각한 위기 상황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섰습니다. 확신하는 믿음으로 섰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의심해 보지 않는 사람 있습니까? 믿음이 좋으면 의심이 없습니까? 의심을 장려할 것은 아닙니다만 중요한 것은 의심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의심을 의심으로 끝나게 하지 말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점점 더 견고한 믿음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보시기를 원하는 믿음입니다.

1. 나는 의심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까? 그때 의심을 어떻게 처리하였습니까? 앞으로 그 의심에 대하여 어떤 자세로 임하겠습니까?

2. 특별새벽기도에 받은 은혜를 나눠봅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완주하도록 함께 기도로 도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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