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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주 / 우리의 믿음을 기도로 보입시다.(눅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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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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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제목> 우리의 믿음을 기도로 보입시다.
* 성경> 눅18:1-8
* 찬송> 83, 364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의 목적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입니다.(1) 그런데 예수님이 비유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 이 말씀은 ‘이렇게 기도하는 믿음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겠느냐’는 탄식임과 동시에 ‘이렇게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을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주님의 소원이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말세에 주님께 보일 수 있는 믿음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분명 그 사람이 믿음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믿으니까 기도하지요. 그렇다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이레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이 특새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고, 믿음으로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음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세이레입니까? 다니엘서10장 2-3절을 보면 다니엘이 세이레 동안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대가인 미국의 존 맥스웰이라는 사람이 연구 발표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이전 행동습관이 바뀌는 시점이 21일 째 되는 날부터라고 합니다. 또한 계란이 알에서 부화되어 병아리가 되기까지 21일이 걸린다고 하니 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 세 이레, 21일이 우리의 기도하지 못했던 비신앙적인 행동습관이 바뀌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기간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지막 때에도 여전히 보기를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살전5:17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두 가지의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삶을 기도하는 자세로 살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갖지도 않는 사람이 기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의 삶을 살다보면 즐겁고 보람되고 희망적인 일도 있지만 화가 나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절망적인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라도 매일 매일 정기적이고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은 혈기를 부리거나 자기의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기도로 성령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기도적인 삶입니다.

이렇게 항상 기도하여 매일의 삶에서 실수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바람입니다.

2.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항상 기도하라는 말과 연결된 내용입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낙심’이라는 말입니다. 낙심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낙심되기 시작하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낙심은 곧 의심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야고보는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치는 바다 물결 같다고 말하면서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로부터 얻기를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약1:6-7) 의심이 자라기 시작하면 그것은 꼬리를 물고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기 시작하는데 이 의심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존재여부에 대한 것까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에게 문제가 발생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됩니다. 그러면 먼저 다가오는 것이 낙심입니다. 낙심이 지나치면 하나님께 대한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도가 심해지면 의심이 생기고 의심은 하나님에 대한 부인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단은 낙심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우리를 자주 방문합니다. 여기에 걸려든 사람은 기도다운 기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3. 우리가 기도하다 낙심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1)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7)

재판장과 과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관계입니다. 재판관에게는 과부가 단지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래도 재판관이 들어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니 안 들어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라는 사실이 희미해지는 순간 어려운 일이 닥치고 힘들어지면, 그리고 기도를 한다고 해도 응답이 없으면 곧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의심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낙심하게 되고, 기도는 힘을 잃고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 생애를 시작할 때 사단이 찾아와 시험하였습니다. 그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2)말 씀 안에 거하면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이길 때 모두 말씀을 사용하여 이기셨습니다. 말씀이 나를 주장하지 않으면 낙심이 나를 주장하게 됩니다. 사람은 별 수 없이 그 속에 든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을 금식으로 배는 비었지만 대신 말씀은 가득 채우신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 충만이셨고 시험 때마다 말씀으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낙심이란 ‘문제에 내가 휩싸여 나 자신을 냉철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없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이 말씀 없이 기도하면 자칫 그 기도는 나의 신세타령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문제 속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문제만 붙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있으면 거의 대부분 말씀에서 문제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기도가 힘이 있고 문제도 쉽게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119:50)

4. 그러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7절에는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비유 이야기에 나오는 과부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간절함입니다. ‘택하신 자’로서 응답에 대한 조건이 구비되었다 볼 수 없습니다. ‘그 밤낮 부르짖는’ 또 ‘원한’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도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과부는 자신의 간절함을 끊임없이 재판장을 찾아가서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응답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면 말로써 그칠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호소할 것을 원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육신적인 것으로 가득 찬 우리가 간단한 기도로 쉽게 응답을 받으면 우리는 필요할 때 하나님을 이용해먹으려고만 할 것입니다. 물론 짧은 기도로 하나님의 커다란 능력을 불러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은 그 짧은 기도 이전에 많은 시간을 열렬한 기도에 바치며 살았던, 문자 그대로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본문에서는 '원한'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만큼 ‘간절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곧 '너희는 기도하되 마치 내가 보기에 원한에 사무친 것처럼 비치도록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입니다.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8)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비유를 상쾌하게 마치지 못했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를 볼 수 있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또 다른 기대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기 힘든 이 시대에 간절한 기도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냅시다!

☞ 지난 몇일 동안의 ‘특새’느낌을 나눠봅시다. 우리의 기도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더욱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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