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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주 / 험악한 세월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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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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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험악한 세월의 끝에서
성경> 창47:7-10
찬송> 37, 441, 434

우리는 우리의 인생 마지막에 우리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바로 왕이 자신의 나이를 물었을 때에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9)
요약하면 나그네 인생이었다는 것과 그 인생 참 험악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의 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고백은 그의 아들 요셉을 애굽에서 만나고 난 뒤에 이루어진 고백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말년에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또 가나안이 아닌 애굽에서 노년을 보내야 하는 자신의 형편을 경험하면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130년 인생의 험악한 세월 끝에서 그가 했던 인생 고백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던져주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1. 험악한 세월
성경에 야곱만큼 화제꺼리가 많은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야곱과 관련된 이야기만큼 많이 나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의 출생부터 특이합니다. 쌍생아, 즉 쌍둥이로 태어나는데 그것도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자권에 대한 운명의 대결을 시작한 듯합니다. 그는 자라면서 장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형과의 갈등 속에서 자랍니다. 결국 형을 속이고 아버지는 속이기까지 하면서 장자권을 가로챕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을 하면서 20년 이상을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외삼촌의 집에서의 야곱의 삶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불같은 사랑, 그리고 죽을 고생’  다행히도 외삼촌 집에서 마지막은 부를 이루어 돌아오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해결하지 못한 채 떨어진 형제간의 갈등은 얍복 나루터에서의 하나님 앞에서는 결단을 통해 극적인 화해로 끝을 맺습니다.
자매간이면서도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한 두 부인의 시기와 질투로 얼룩진 그의 가정사는 편한 날이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하게 만듭니다. 배 다른 네 명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12명의 자식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조금만 관심 있게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을 형들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인신매매를 해 버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에 대한 절대적인 편애는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 대한 대리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후에 야곱은 요셉을 잃고 난 뒤에 역시 라헬의 소생인 요셉의 동생 베냐민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말년은 참 초라합니다. 자신의 가문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기근 때문에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아들들을 보내는 심정은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의 인생 말년에 정말 뜻하지 않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입니다. 그것도 당대에 최고의 실력자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니 반신반의 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고 애굽의 바로 왕이 보내 준 수레를 타고 꿈에도 그리워할 가슴에 묻은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지금 애굽 땅으로 온 것입니다. 당대의 최고의 왕이 보내준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왔으니, 이 인생이 이만하면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의 아들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형들이 동생을 죽이려다 팔아넘겼다는 사실은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야곱에게는 또 한 가지의 부담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약속의 땅으로 받아 지켜온 가나안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바로 왕에게 ‘130년의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나그네 인생
그러나 야곱, 그가 산 130년의 세월을 험악한 세월로만 말한다면 별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유달리 고생한 한 노인의 푸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그네 인생이라는 고백을 함으로써  ‘험악한 세월’이라는 말을 그의 신앙고백적 차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야곱이 왜 나그네라고 했을까요? 나그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있는 곳에 메이지 않고 쉽게 떠나는 것입니다.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고 놓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의 짐은 간단합니다. 그리고 사는 곳에 많은 것을 쌓아 두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라고 고백한 것은 스스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나그네 인생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을 떠날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듯 떠나야 했습니다. 노년에 역시 이제는 식솔들도 70명이나 되고 해서 쉽게 떠날 수 없었지만 또 그는 애굽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사람 또한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를 원했지만 레아가 첫 번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또 자신의 본래 의지와 관계없이 아내의 질투심 경쟁으로 그들의 여종인 빌하와 실바 두 아내를 더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요셉을 잃고, 또 그 아들을 얻는 것은 전적인 그 자신의 의지와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야곱의 인생은 집착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재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친 사고가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사랑에 대해 집착했습니다. 여자에 대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생각의 결론이 ‘나그네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나그네 인생에는 그의 신앙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나그네’라고 할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즉,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더 있고 싶으면 있는 것이지만 야곱의 나그네 인생의 고백에는 하나님이 있게 하시면 있는 것이고 떠나게 하시면 떠나는 것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야곱은 험악한 세월 끝에 서서 가장 성숙된 신앙고백을 합니다. ‘험악한 세월’, ‘나그네 인생’ 이 두 단어만 두고 생각하면 정말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러나 그 인생 면면에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경험하였으니 그의 인생은 곧 신앙생활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 아들들을 축복하기 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할 때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죽음을 앞 둔 야곱은 비록 아들에게 의지하면서 사는 형편이 되었고 자기가 이루었던 부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지만 가장 소중한 신앙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시기 시기 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신앙고백을 점검해 봅시다. 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험악한 세월, 나그네 세월일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바로 고백할 수 있다면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닙니다.

☞ 2007년 12월을 보내면서 금년에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지 서로의 고백을 나누어보고 우리의 신앙 성장과 성숙을 통한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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