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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세째주 /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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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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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
성경> 말4:5-6
찬송> 556, 559

오늘 말씀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부분을 다른 내용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훗날에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시고 그에게 준 임무는 부자간, 아버지와 아들의 간에 있었던 모든 마음의 상처를 고치고 다시 하나 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과 같이 가정의 문제가 심각할 때는 없었습니다. 가정의 사회의 기초이며 가정의 나라의 기반이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나라도 무너집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다른 많은 이유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를 가정의 파괴에서 찾는 사회학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제국 말기에 로마의 귀족, 귀부인들은 간음과 간통을 예사로 했으며 법에 규제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사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은 본래 해적 바이킹의 후예들이었습니다. 그 해적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서 건강한 가정이 생기기 시작하니 열강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 중의 하나는 가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역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가정의 중심은 항상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해야 할 역할을 어머니에게 넘겨주기 시작하면서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 학교에 가면 그 구호가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아버지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아버지가 살아야 사회가 산다.’입니다.

1. 아버지라는 위치
어머니는 항상 가까이 있고 감각적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뒤에 있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가 없어지면 기초 없이 세워진 건물처럼 항상 허전하고 불안한 것이 아버지의 위치입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 땅 밑의 반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아버지라도 자신의 가족들을 보호해야한다는 본능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 가장 비참해집니다.
남자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남편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는데 또 아버지까지 되어 버립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수년간 뉴욕 형사재판소 판사를 지낸 사무엘 리보이츠는 청소년 범죄를 위한 해결책을 이렇게 처방했습니다. “아버지를 가장의 위치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교소도 사역 전문가인 빌그레스는 그의 수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수감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여러 해 동안 교도소 수감자와 지내오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2. 아버지의 영향력 - 자신도 모르게 닮아 버린 아버지
도대체 아버지란 무엇입니까? 아버지들이 겨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버지 상(像)이라는 것은 많은 경우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아버지 상(像)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그맨, 이홍렬 씨가 쓴 책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을 하기는 어렵다’(중앙M&B)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거울을 바라보니 그 안에 아버지가 있었다.”
좋은 아버지 상(像)을 물려주면 좋겠는데 과연 그것이 소망하는 것처럼 가능할까?

성경에서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겔18:2)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그의 아들의 이가 시리다고 합니다. 그것은 대를 잇는 저주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씀에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겔18:3)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이 저주를 종식시키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회복시키고 저주를 종식시킨다는 말입니까?

3. 십자가에서 이루신 아버지와의 회복 사건 - 이제 다시 아버지의 자리로.
오늘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엘리야가 와서 부자간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이라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말하는 것이고, 세례 요한의 사역은 곧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곧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일곱 말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1언 -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4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7언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친근한 성부와 성자의 관계인 ‘아버지’로 시작했다가 아들을 죄인 취급하시는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로 다시 마지막에는 다신 ‘아버지’로 마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철저하게 아들로서의 버림을 당함은 바로 우리의 부자간의 단절의 고통을 대신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역기능적인 부자 관계 속에서 고통당할 이유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53:5)

그래서 이제 다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바(아빠)로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우리의 삶의 현장의 첫 번째 관계인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진정한 회복을 이루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모두가 다 구원의 기쁨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삶은 구원받지 못한 삶을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구체적으로 구원의 삶을 훈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세상의 백성으로 살았던 우리에게서 갑자기 천국백성의 삶이 저절로 나타나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4:7)
경건도 연습, 즉 훈련해야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부모)와의 관계의 회복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줄을 믿고 구체적으로 회복의 자리로 나아가서 아버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입시다. 그때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이루어주신 일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 가정의 달에 계속 가족관계에 대한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1.나와 나의 아버지(어머니, 부모님)와의 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나누어 보고, 아버지(부모)의 실수를 용서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아버지의 자리에 세워주지 못한 우리의 죄도 용서를 구합시다.
2. 가정의 달에 나와 나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3. 이번 주간에 있을 ‘가정 리모델링축제’에 초청할 가족들을 점검하고 그들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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