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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세째주 "시돈의 관부와 수리아의 나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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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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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시돈의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
성경> 눅4:14-30
찬송> 411, 359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20세기 초에 영국 사람들이 남아공화국에 갔더니 아이들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놀고 있더라고 합니다. 영국 사람들이 초코릿을 줄테니 바꾸자고 하니 좋아하며 바꾸더랍니다. 보물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 보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행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모인 무리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성경을 펴셨습니다. 이사야61:1-2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내용이 18-19절입니다. 그 다음 예수님의 말씀은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1)고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 우리의 예배식으로 말하면 성경봉독 후에 설교를 시작하셨는데 그 설교 메시지가 “이 성경에서 ‘나’라고 지칭된 사람은 다른 아닌 바로 나 예수다”라고 말씀하시며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부터 시작하여 자신에 대한 증거를 계속 해 나가신 것으로 보입니다.(22a)
이후에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첫째 반응은 은혜를 받은 겁니다. 둘째 반응은 놀란 것입니다. 셋째 반응은 ‘저가 요셉의 아들이지 않는가!’ 이었습니다.
마13:55에는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로 기록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입의 메시지는 은혜롭고 놀라운데 그 말을 한 사람 예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선입견이 신앙을 앞서서는 안 됩니다.
나사렛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권능의 말씀을 받고서도 그들이 가진 선입견이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선입견이 우리의 성도를 실족하게 하고 나 자신의 신앙생활도 풍성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출신지역, 연고, 학벌 등으로 그 사람을 먼저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그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는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의 거듭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이 은혜의 풍성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사렛 마을은 그 어떤 마을보다 복 받은 동네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우리의 전통이나 우리의 익숙해진 교회관습이 혹시 우리의 영적 풍성함을 체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없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2. 선민의식보다 더 필요한 실제 믿음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구약 성경에 나타난 사건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시돈 땅의 사렙다 과부와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을 예로 들어 나사렛 사람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인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민족보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백성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이방인이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 두 사람이 다 인생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렙다 과부는 기근으로 인해 양식이 떨어져 곧 죽을 각오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나병환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에도 그 시대에 기근을 당하는 과부가 많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그 시대에 나병환자(문둥병자)가 이스라엘도 많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의미는 ‘그런데 왜 이방인이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민의식이 강해도 그것이 실제 믿음을 동반하지 못할 때는 종교적인 아집이 될 뿐입니다.

3.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동 믿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25),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27)를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는다면 이스라엘이 당연히 받아야 하고 이스라엘에도 이런 은혜를 받아야 했던 대상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 이방인이 은혜를 입었습니까? 그들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자신의 뜻을 버리고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사렙다 과부는 기근 중, 마지막 먹을 양식을 하나님(선지자)의 말씀대로 선지자 엘리야를 위해 제공하였습니다. 그녀는 과부였고 아들도 있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근이 마칠 때까지 이 과부의 집에는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아람의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대로 낮추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몸으로 이스라엘까지 직접 찾아간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것입니다. 그에 따른 엘리사 선지자의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사환을 보내 요단강에 일곱 번 씻어라는 메시지만 전했습니다. 또한 그의 말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고국에 있는 강들은 요단강보다 훨씬 더 깨끗한 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엘리사 선지자의 말 대로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몸은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었습니다.

나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은혜에서 제외된 사람처럼 생각되지만 믿음으로 반응하는 한 이방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명목상의 이스라엘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응하는 한 이방인은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왜 엘리야 시대와 엘리사 시대의 사람을 예로 들었겠습니까? 구약 성경에서 이 두 사람의 때는 기적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대상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당연히 먼저 누려야할 이스라엘에는 은혜가 없고 이방인에게 그 은혜가 임한 이유를 더 깊이 묵상해 보아야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도 그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명목사의 신자들에게는 항상 그럴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요청되는 선민의식이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다른 민족,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영적인 각오가 아니겠습니까?

→나의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는 선입견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진정한 선민의식이 있습니까? 서로 나누고 구역장이 정리한 뒤 뜨겁게 기도합시다.(※주여 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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