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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네째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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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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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성경> 마6:25-34
찬송> 309, 307

바울은 하나님의 명확한 뜻을 우리에게 밝히면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살전5:18)
이 감사와 어울리는 단어는 평안, 기쁨, 만족 등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와 반대되는 단어는 불평이요, 불평과 어울리는 단어는 걱정, 근심, 불만, 불안 등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의 대부분의 걱정 근심은 현실적인 문제인 의식주 문제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을 사신 예수님은 인생이 메일 수밖에 없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마디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걱정 근심 염려보다 감사 속에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성경 말씀을 통해 분명히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내 생명(영혼)의 존귀함부터 깨닫자.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
사람을 위해 먹을 것도 있고, 사람(몸)을 위해 입을 것도 있는데, 마치 먹을 것을 위해 사람이 사는 것처럼, 입을 것을 위해 몸이 있는 것처럼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걱정 근심거리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못 먹어서 걱정입니까? 과연 못 입어서 걱정입니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의 걱정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더 낫지 못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꿔서 입을 여벌의 옷이 있고, 밥을 거르지 않고,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 인구 중에서 25% 안에 드는 부자입니다.
딤전6:8에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는 사실 이런 먹고 사는 것에 얽매여 우리의 인생을 보내야 할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영인 사단이 자주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법에 왜곡시킵니다. 그래서 자주 우리는 전혀 엉뚱한 것에 매여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연약한 것에서 우리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온 이 땅에서 공식적으로 제일 처음 받으신 시험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제일 처음 받으신 시험이 돌이 떡덩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받을 당시에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셔서 매우 주리셨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답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마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육신의 것만을 위해 사는 자처럼 오해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먹을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몸이 옷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말이 뒤바뀐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육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쩌면 그 시간의 1/10만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에게 말씀하시면서
(눅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세상 사람들이 매여 있는 의식주 문제에서 탈피하라. - 생존을 위해 살지 말고 복음을 위하여 살아라.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라는 삶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현실적인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뚜렷한 두 가지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과 이방인의 삶입니다.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삶은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마 6:31-32)
이것은 생존을 위한 삶입니다. 생존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복음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그 목표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삶을 추수감사절의 역사적 기원이 된 청교도들의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유래와 역사적 유래 두 가지 면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입니다.
성경적 유래는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는 초막절에서 찾을 수 있고, 역사적 유래는 청교도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탈출해서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을 지냅니다. 생존하기에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었던 광야에서 40년의 세월동안 그들은 기적을 체험하며 끝내 가나안을 밟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서 씨앗을 뿌렸고 때가 지나자 추수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막을 짓고 40년 동안 지난날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 날을 초막절이라 했으며 오늘의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첫 번째 거둔 한 해의 추수 때에 과거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그들에게 입히시고 먹이신 놀라운 은혜를 새삼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들이 모압 평지에 모였을 때 그들이 했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신8:2-4) “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의 궁극적인 감사는 한 해의 인도에 대한 감사를 넘어 일생의 인도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담겨져 있고 그 고백을 매년 기억하여 감사로 드리는 절기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또 하나, 역사적 기원은 17세기 초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02명이 65일 동안 풍랑과 질병과 싸우며 신앙을 찾아 기나긴 항해를 했습니다. 영양실조, 추위, 괴혈병 등과 자연재해 속에 그들이 신대륙 미국에 도착했을 땐 78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신대륙인 미국이었습니다.
이듬해 가을 그들은 어렵게 소산물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도 쌓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은 환경을 초월한 감사의 제전이었습니다.
이들이 세운 나라가 지금 최강국 미국이 된 것입니다. 이들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육신의 안일한 삶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의 부요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육신의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그들의 중심엔 ‘떡’이 우선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의 의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존을 위해 살지 맙시다. 할 수 없이 살지 맙시다. 우리의 영혼이 지향해야 할 바 복음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의미 있는 삶을 남기도록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특새와 영적도약을 위한 특별집회에 받은 은혜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면 기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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