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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세째주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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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0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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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구역공과(06-11-12)-

제목>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성경> 막9:14-29
찬송> 479, 482

오늘 본문 바로 앞 9:1-13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일시적으로 임한 천국의 황홀경에 빠집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기도 모르게 말합니다. “주님 여기에 주를 위하여 초막을 지읍시다.”
그러나 곧 모든 상황은 종결되고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자 바로 그들 앞엔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9:18)
이를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문제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문제라고 하는 것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본래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세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진 진짜 문제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볼 때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은 시험 문제가 문제 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일 수 있습니다.

오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온 아버지가 예수님이 안 계시니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름으로 전도하면서 능력을 나타낸 적이 있었습니다.(눅10:17)  그러나 이제 아버지의 말을 보십시오.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9:18하)
이 일로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4) 이전에 있었던 그 많은 소문, 그리고 실제 능력이 다 거짓이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아들의 고통 앞에 무력한 아버지, 그 문제를 가지고 찾아 왔으나 해결할 능력이 없는 제자들. 이것으로 사람을 짓누르려는 서기관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의 상황이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도 바로 그 아비처럼, 제자들처럼 무력한 것은 아닙니까? 혹 자신도 무력하면서 위로할 줄 모르고 그 사람을 비웃고 짓누르려는 서기관은 아닙니까?

1. 사실은 믿음의 문제
그러나 주님은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습니다. 이 문제는 능력의 문제이기 전에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아비가 답답해하면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19)
예수님은 당장 믿음이 없는 세대를 탄식하셨습니다. 도대체 얼마를 더 기다려야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아비와 예수님의 대화 중에 우리는 믿음과 능력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비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하니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곧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아들을 고치시고 난 뒤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조용히 예수님께 나갔다는 말은 그들이 심각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능력 없는 상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사실 능력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믿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2. 믿음은 기도에서 시작한다.(29)
마태복음 17:14-21은 오늘 본문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의 답이 좀 다릅니다. 한 번 보십시다.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19-20)
마태복음에는 무능력의 원인이 “믿음이 없는 연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누구의 기록이 정확한 기록입니까? 마태입니까 마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며 오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기도와 믿음을 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더 강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17:20 다음에 오는 말씀이 막9:29인 것입니다. 연결시켜 말하면 이렇습니다. ①우리는 어찌하여 못합니까? ②너희 믿음이 적어서 그렇다 ③그러므로 기도하라. 그러므로 이 말은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고 기도하면 능력도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기도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려고 해도 믿음이 있어야 기도하지?”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맞는 말 같지만 틀렸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관해 아무리 많은 성구를 알고 암송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기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알게 되고, 기도를 하면서 나의 문제를 알게 되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기도는 문제 해결의 능력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3. 나의 무력함의 원인?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28절에 우리의 상황을 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나는) 어떻게 해서 그 문제를 능해 해결할 수 없었습니까?” 여기에 문제라는 말에 나의 모든 연약을 다 넣어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까? 우리 집에 왜 이렇습니까? 나는 왜 남편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나는 왜 주일을 지키지 못합니까? 나는 왜 십일조를 하지 못합니까?나는 왜? 나는 왜? 나는 왜?”
그러나 이제 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 기도 했느냐? 너 정말 진지하게 무릎부터 꿇어봤느냐?”

4. 세 이레 특새 중
우리 교회는 이미 ‘여호와의 행적찾기 세 이레(21일) 특별새벽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특새를 통하여 교회에 부흥, 가정에는 결실을, 개인적으로는 간증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제외되는 일 없이 이 축복 속에 있기를 소원합니다. 은혜를 받을 때 함께 받는 것이 쉽습니다. 여름에는 열을 조금만 가해도 금방 데워집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은 같은 온도까지 높이려 해도 여름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함께 은혜 받을 때 받으면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능력을 체험하고 삶에서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실마리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갈 때 같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주간에는 특별 부흥집회가 연결됩니다. 깊은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기회입니다.
구역끼리, 지회끼리, 서로가 모두 세 이레(21일)를 성공하도록 격려하고 도웁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모두 이번 특별새벽기도회 기회를 구체적인 기도의 무릎을 통하여 믿음의 능력을 회복하여, 부흥과 열매와 간증의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호와의 행적찾기 세 이레 특별새벽기도회’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당신의 금번 특별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이미 받은 은혜를 나누고 힘든 부분은 서로 격려하면서 성공적인 특새가 되도록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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