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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바람이 일 때(200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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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재영 작성일200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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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바람이 일 때
성경> 행5:1-11
찬송>  34, 172, 400
-구역공과(05-03-06설교, 인도자용)-


  지난 토요일부터 주일까지 부산에 100년 만에 기록적인 눈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쌓였던 눈도 이제는 말 그대로 봄 눈 녹듯 다 녹아버렸습니다. 계절이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미 봄은 왔습니다. 앞으로 또 꽃샘추위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다가오는 봄의 기세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참 신비합니다. 봄이 다가오니 땅 밑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각 종 생명이 움틀 거립니다.
  성도 여러분, 본격적인 봄이 시작된 3월에는 우리 장산교회 성도들의 영혼에도 약동하는 새로운 영적 기운이 느껴져야 합니다. 적어도 장산교회 성도들이라면 이런 기운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3월에는 성경대학이 시작되고 그러면서 곧 제 7차 ‘수문앞 특별새벽기도’가 시작됩니다. 특별새벽기도는 고난주간이 포함되어 있고 특별새벽기도가 마치면서 곧 넷째 주일에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실 말씀이 ‘성령의 바람이 일 때’입니다.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의 바람일 불 때에 성령의 바람에 역행하는 사람을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날 12명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120명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이 오심으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성령강림 후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고 전도하였습니다. 사도들의 외침에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또 소유가 넉넉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교회 앞에 바치는 일이 흔해졌고 대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 평신도지도자였던 바나바가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놓았습니다.(행4:36-37) 이런 와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로서 부부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도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작정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마음은 변해 작정했던 헌금의 일부를 감추고 나머지를 교회 앞에(당시 교회의 대표였던 사도 베드로 앞에)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고 사실을 물었을 때에 그들은 ‘모두 다 가져온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꾸짖었고 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일은 당시 교회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내에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죽어야합니까? 그들의 거짓말은 죽을 만큼 그렇게 큰 범죄입니까? 우리는 이 사건을 초대교회의 역사적 현장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들의 범죄는 과연 어떤 종류의 죄입니까?

1. 공동체의 순전함을 훼손시킨 죄입니다.
  이 때는 예루살렘 성도들 모두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성령의 하시는 일에 순종하기 위해 민감한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루살렘 교회를 정말 기뻐하셨고 이런 교회를 보전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본디 교회는 이런 곳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런 거룩한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고 그 분위기에 역행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성령의 바람에 초를 치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분노하신 것을 보면서 오히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예루살렘 교회의 순수함을 얼마나 기뻐하셨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순수한 열정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을 보시게 된 것입니다.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위가 시기적으로 너무 크게 보이는 죄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도 크게 다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아 살아가려고 하는 때에 나 혼자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나니와 삽비라와 같은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 되고, 그 사실을 기뻐하면서 모두 달려가려 할 때에 나 혼자 방관자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다루어질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우리 교회 속에 일어나는 영적 움직임을 얼마나 감지하고 있습니까?

2.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 죄입니다.
  성령은 강력하게 예루살렘 교회에 역사하셨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는 자신의 문제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살피도록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필요 이상의 것을 누리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결핍을 채우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 성령의 역사로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런 역사의 주체이신 성령을 속이려 하였다가 들통이 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 자신을 속였다고 말하지 않고 성령을 속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하) 그래서 성령께서는 분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영적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사도의 권위는 곧 성령의 권위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를 속이는 것이 곧 성령을 속이는 것이었고(3) 그것은 곧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4하) 이것을 종합해 보면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때로는 교회 지도자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완벽한 사람이라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 이전에 예수님을 부인한 실수가 있었고, 이후에도 실수를 해서 후배인 바울에게서 비난을 받습니다. 이런 자의 말도 이렇게 권세가 있을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돌아보는 위치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모세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의 실수는 그의 형제 아론과 누이 미리암의 비난 꺼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대변자였습니다.
오늘날에 하나님은 교회에 자신이 위임한 자들에게 주님의 권위로 사역하게 하십니다.
2)거룩한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적인 생각을 배제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헌신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들은 이 마음을 복되게 여기고 헌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곧 인간적인 생각이 그들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마음입니다. 사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처음 신령한 마음을 주신 성령을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마음에는 항상 그 주변에 사단의 마음들이 서성거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틈이 생기면 가차 없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인간적인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맙니다. 그 인간적인 마음의 한 종류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는 100% 헌신이 아니면 인정받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뜻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대처해 어려움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3.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나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돼지가 그 누웠던 자리에 돌아가고 개가 그 토하였던 것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전체 공동체가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그들만 역행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바로 전체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단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이스라엘 다수가 범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 아간의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요나 선지자가 탄 배의 모든 사람이 함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에 디딤돌이 되었으면 되었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에 디딤돌입니까 걸림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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