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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2004-11-26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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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경용강도사 작성일2004-11-24

본문

제목>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 행11:19-26
찬송> 34, 411, 507

        로버트 스티븐슨이 쓴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중인격의 대명사가 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동일한 한 사람이 낮에는 고매한 인격의 지킬 박사로 밤에는 흉악한 하이드씨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에 관한 글을 읽다가 저자 스티븐슨 가문에 영국의 유명한 법률가와 장로교 목사를 많이 배출되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스티븐슨이 장로교인들의 이중적 신앙생활을 보고 이런 작품을 쓴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지 못하면 삶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면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구분된 자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안디옥이라는 곳에서 사용되었음을 알려줍니다.(28)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으로 안디옥까지 피신을 한 성도들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해 설립된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교회에 파송하였고 바나바는 사울(바울)까지 초청하여 함께 사역하여 교회는 뿌리를 든든히 내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사람들은 안디옥교회에서 신앙생활하던 무리를 향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분명 성도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닐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부르던 명칭은 ‘제자들’ 혹은 ‘형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불렀겠습니까? 이 명칭은 안디옥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눈에는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는 이 집단을 향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조금은 경멸하는 뜻이 있습니다. 즉 이 말에는 ‘그리스도 밖에 모르는 자들’ 더 현실감 있게 말한다면 ‘입만 벙긋하면 그리스도 뭐 어쩌고…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몇 십 년을 신앙생활 해 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믿은 지 일년이 갓 넘은 사람들에게서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하고 특별한 생활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고, 모여도 교회를 중심해서 모였고 그들끼리 함께 교제하였습니다. 이들의 삶에 있어 교회는 그들의 삶의 전부처럼 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을 볼 때 이런 시각이 있습니다. 그들은 조금은 경멸하는 투로 우리를 ‘예수쟁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우리를 볼 때에 자신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가짜입니다. 그러나 경멸의 투에 말속에 경외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조롱을 하면서도 두려워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리가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은 세상을 배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안디옥 도시를 떠나 산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안디옥은 그들의 삶의 터였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그들이 살던 집에 그대로 살고 있었고, 이전에 그들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디옥이라는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전에서 소금은 가치가 없습니다. 밝은 세상의 빛은 가치가 없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금은 철저하게 세상 가운데 삶을 살아야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헤롯의 사람’이라는 용어도 있었고 또 ‘가이사의 사람’이라는 용어도 있었는데 똑같은 의미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곧 이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말합니다.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자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하려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속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도 받는 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9절 말씀에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안디옥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여 안디옥교회를 이루게 한 사람은 환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환난을 받아 피난을 온 자들인데, 피난 온 안디옥에 와서도 예수 믿으라며 전도한 것입니다. 즉, 그들은 주님을 위한 환난이라면 기꺼이 받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환난에 더욱 신앙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도인지 아닌지는 환난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고기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은 고기는 물결 따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환난의 물결이 우리에게 닥쳐올 때 진정한 성도들 그것을 대항해 섭니다. 그리고 결국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단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구절인 벧전4:16에는 고난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3.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했으니 그리스도를 닮기를 소원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들의 당연한 성장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은 항상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실까?’하고 묻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안디옥 교회의 첫 사역자 바나바가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했던 말씀의 주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가 이르러 …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으라 권하니”(23)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바나바의 권면처럼 그리스도 주께 흔들림 없는 굳은 마음으로 붙어있기를 원했습니다. 주님께 굳은 마음으로 붙어 있으면 자연히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후3:3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고후2:14에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만나 우리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내용을 담아 편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서 사람들은 어떤 냄새를 맡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아는 사람이 여러분을 머리 속에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로 여러분을 기억하겠습니까? 인정사정없는 사람. 돈밖에 모르는 사람. 자존심만 강한 사람…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비폭력 무저항 평화주의자, 인도의 국보로 일컬어지는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에 유학할 당시 성경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감화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주일이 되어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영국 교회는 그가 그들의 식민지인 인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멸시하고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낙심하여 교회의 문을 나서며 다음과 같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존경하나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나타내야 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의 이름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살아갑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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