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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삶 수료 간증 2014.08.03 이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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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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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수료 간증
- 이 인숙(이근엽 목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근엽 목장의 목원 이인숙 입니다.
저는 2남1녀의 맏이로 영도에서 태어나서 17살 때 반여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중3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데 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데 마음이 너무 편하고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듯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계속 다니지 않았습니다.
스물여섯 되던 해. 저는 2살 어린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여 남매를 낳고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남편은 점점 가정에 소홀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바람을 피우고 매일 술과 노름에 빠져 살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하며 숨어살고, 붙잡혀 수감생활을 하고, 술을 마시면 입에 올릴 수도 없을 만큼 난폭했습니다. 애들 데리고 도망도 많이 다녔습니다.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결정이 나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남편을 죽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뼈대 있는 가문 운운하며 절대로 이혼은 안 된다는 겁니다. 억지로 나의 삶을 지탱시키고 있는 것은 불쌍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삶이 하루하루 계속되던 어느 날,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을 했습니다. 그때 애들이 4학년, 1학년이었습니다. 그렇게 미웠던 남편이었는데 저승길을 서둘러 가려고 정을 떼려고 그런 짓을 했나 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습니다.
남편 사후에 친정엄마와 아버지가 계시는 반여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두 남매를 데리고 홀로 살아가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노가다도 해봤고 트럭을 사서 장사도 했습니다. 조금씩 돈이 모이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일하다 모아둔 돈 밑천까지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때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힘든 마음을 나눌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삶의 의욕을 많이 잃고 세상을 한탄하며 삶을 절제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가기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세월을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나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술에 인생을 망친 남편의 떠올리기 싫은 그 모습이 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힘든 것 잊어버리자고 한잔 두잔 했던 술이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술을 안마시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중독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떤 교회 집사님과 함께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조금 교회에 적응이 되려는 때에 믿었던 교인한테 배신당하고 크게 시험이 들었습니다. 두 번 다시는 교회는 안 다닌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로는 교인들이 하나같이 가식적인 인간들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교회라면 펄쩍 뛰며 반대하셨는데 교회를 나가신다는 겁니다. 엄마도 저도 같이 나가보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아버지 마음 맞춰드리려고 집에 가까운 교회를 선택한 곳이 장산교회이었습니다.
이후 아버지와 엄마는 열심히 다니셨는데 저는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예배시간은 너무 지겨웠습니다. 목장 모임을 연락받았고 처음 참석할 때도 가기 싫었지만 참석한 후에는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아마 남편 잃고 너무 세속적으로 살았던 죄책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목자 목녀님은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문자에 전화에... 내가 아무 응답을 안 해도 또 하고 또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분들은 내가 이전에 생각하던 그런 가식적인 분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위해 누구보다 진실하게 기도하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목장에 대한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장에 조금 적응을 하기 시작할 때 또 다른 시련이 닥쳤습니다. 저의 몸에 이상을 느껴 진단해 보니 유방암이었습니다.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살아보려고 하는데... 집에 있어도 울고, 교회에 와서도 울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울고, 길을 가다가도 울고, 잠자리에 누워서 울고 애들 볼까봐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서도 숨죽이며 울었습니다.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죽을까봐 울고, 친정 엄마는 당신보다 딸이 먼저 죽을까봐 울고...
돈도 없는데... 애들 아직 결혼도 안 시켰는데... 남들에게 잘 없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쉽게 생기는 것 같아서 억울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할 때에 우리 목자님, 목녀님 가족처럼 병원에 태워주고 수속과정을 도와주면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한테 주님의 사랑으로 쏟아 부으신 헌신과 정성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8번의 항암치료가 얼마나 힘들든지... 고비도 많이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항암치료가 있을 때는 거의 매번 헌신대에서 목사님으로부터 기도를 받았고, 목장식구들은 제 일처럼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자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체력적으로 부작용 없이 항암 치료를 견딘 것도 그렇고, 치료비가 모자랄 때 기적적으로 치료비가 생겼고, 어떤 때는 목장 식구들이 돈을 모아서 채워주었습니다.
생명의삶 공부는 발병하기 전부터 광고도 듣고 권유도 받았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고 목사님과 공부를 한다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계속 목장에서 권유를 받았지만 결단을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 암 판정을 받았고 그 후로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입원에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과연 공부를 끝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체력에 대한 걱정,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유도 핑계도 대지 않기로 마음먹고 결단하고 시작했습니다.
생삶 강의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즐거웠습니다. 목사님 말씀도 설교 시간과는 다르게 더 가까이에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멀게만 여겨졌던 성경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가까워졌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내 삶에 응답하셨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좀 더 알게 되었고, 이전에는 착하게 사는 것, 남을 돕고 사는 것이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모르면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삶 이후 들리지 않던 설교 말씀이 귀에 속속 들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렇게 지루했던 예배시간이 기대가 됩니다.
예수 믿기를 너무 잘했고 예수 믿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생삶 성령체험 하는 시간에 목사님께서 안수기도를 해주셨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면서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목사님이 현실적인 한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와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 시간 아들 취직을 위해 기도를 했었는데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투병단계에 있지만 몸이 회복하고 나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면서 하나님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고 우리 목자 목녀님 같이 하나님 닮아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8월 17일에 치료상태를 점검하는 전신CT 촬영이 있습니다. 결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께서도 저를 사랑하시어 완쾌하여 주시리라 믿으면서 남은 생애 하나님 닮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목사님을 비롯하여 장산교회 모든 분들과 기쁨을 주지 못하고 고생만 하게 한 우리 엄마, 우리 목장식구들 목자님, 목녀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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