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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목자목녀간증 2013.07.14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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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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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임 목 자 간 증>
이영철 목자
안녕하세요. 저는 황영환 목장에서 분가하는 신임 목자 이영철입니다.
나이는 42살입니다.
제가 장산교회에 나오게 된 동기는아내와 아들의 전도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말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식사기도 때마다 “우리 아빠 교회 오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데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 행사 때 가끔 나오다가 아내가 교회에 축구부가 생겼다고 운동을 좀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축구만 열심히 했었습니다.
교회는 저의 적성에 영 맞지 않는 곳이었고 예배시간이 불편하고 지루했었습니다.
축구하는 성도들과 조금씩 알아가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횟수가 좀 더 늘었지만 교회에 붙들리게 될까봐 되도록이면 멀리하고픈 게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집이 교회 옆에 딱 붙어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 후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항상 교회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니 교회 오는 것이 좀 쉬워졌고 좀 더 자주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가깝고도 먼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의 권유로 아버지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정말 교회보다 더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첫날부터 밥 먹은 게 체해서 포기하였고 두 번째로 간 아버지학교는 불편한 마음을 해결하지 못한 채 겨우 수료만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버지학교에 그런 반응을 나타낸 데는 아버지학교의 강의 내용이 내 자신을 너무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부모님에 대한 상처가 아주 컸었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부모님의 싸움과 고함 소리였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집에 오시는 아버지는 오실 때마다 집안 살림을 다 부수고 가셨고 어머니 또한 참지 않으셨습니다. 가정불화가 심각한 상태여서 저는 방치되어 자주 굶거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며 눈치 밥을 먹었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일들이라 다 말씀 드릴 수 는 없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모든 최악의 상황가운데에서 자라났습니다. 제 마음에 남은 것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들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내 마음속에는 저 사람과 살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순하고 착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눈이 참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었는데 저는 그걸 나를 좋아하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도 아내는 절대 그런 말 한적 없다고 하는데 저는 확실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넘어가버려서 지금 이렇게 아들을 낳고 살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함과는 달리 아내는 그렇게 원치 않는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내를 붙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은 마치 부모님의 삶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고함이었고 마음에는 항상 분노가 가득 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보고 배운 그 모습이... 정말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을 테지만 묵묵히 잘 참아주었습니다.
이 시간을 빌려 힘든 시간들을 잘 참아주고 견디어준 아내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장산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되던 시기에 회사에서 축구하다가 다친 무릎을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이틀 뒤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갑자기 어려운 일들이 겹쳐지니 어떻게 해야 될 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우리 황영환 목자님께서 병원에서부터 장례식장까지 자리를 지키며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목장의 목원인 신인숙자매도 회사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장례식장의 궂은일을 계속 도와주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었습니다. 그 후 고마운 마음에 목장에 더 자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평신도세미나’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순수함과 믿음을 보았고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천국 같았습니다. 교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의무감에서 나가던 교회에 대한 나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평신도 세미나 이후에 계속되는 부흥회와 간증집회는 나를 위한 부흥회였고 나를 위한 간증 집회였습니다.
집회 중에 저의 상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어져 갔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엔 기도도 잘되지 않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자꾸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왕 결심한 거.. “아버지~” 하고 불렀더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칠 수 없는 눈물만 하염없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기도는 못하고 계속 울기만 하다가 돌아오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발 안 울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되었을 때 새벽기도 설교가 마치고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고 불렀는데 갑자기 한 목소리가 마음에 정확하게 들렸습니다. 딱 한마디였습니다. “내가 다 안다.”
단 한마디 ‘내가 다 안다’고 하신 그 말씀‘속엔 모든 것들이 다 함축된 말이었습니다. 나의 살아온 삶도.. 고통의 무게도.. 부족함도 다 알고 계신다는 거였습니다.
이때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 같습니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났고 또 새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고 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장은 하나님 응답하심의 통로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목자 목녀님의 간절한 기도 덕분 임을 믿습니다. 
저는 목장의 나눔을 통해 우리 자매들의 남편영혼구원에 대한 간절함과 고통을 많이 보았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들 때문에 겪는 자매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제가 더 빨리 주님 앞에 서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희는 깨어져가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어 저희처럼 목자와 목녀로 분가시키는 목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목자 목녀님.. 저와 같이 힘든 사람을 받아주시고 또 분가식을 하기까지 인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인내하며 제가 받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늘 분가식을 하면서 정말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거친 성격과 직설적인 말 때문에 상처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인내로 참아주신 성도 여러분들과 목장식구들께 먼저 공식석상에서 용서를 구한다는 말과 아울러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착한 아들로 성실히 살아가며 영혼구원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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