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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간증 2013.06.02 이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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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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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신록이 아름답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송화석 목장의 목원 이경애입니다.
저는 내 자신이 항상 착하고, 부지런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을 아끼고, 내 가정에 대한 책임은 다하며 사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일 수도 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나의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2012년 10월 7일 오후 2시는 정말 잊지 못하는 날입니다. 제가 장산교회에 온 날짜와 시간입니다. 아는 사람이 교회 나가라고 권유한 것도 없이 제 스스로 교회를 찾아 나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삶이 나 혼자의 삶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며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 정말 평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계속 나를 지배하였습니다. 둘째 아이에게 나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을 둘째 아이는 나를 장산교회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교회를 찾아와서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 같습니다. 지난 나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힘들게 살고 있는 나를 동정하듯 주위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힘들게 살지 말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라”고 조언을 해주면 “골치 아픈 소리 좀 그만 하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제가 혼자서 사는 게 안타까워서 친정 엄마가 “난 네가 찬송을 부르면서 마음 편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에도 “제발 그런 소리 그만 좀 하라”며 저의 맘을 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회에 나오고 나서 깨달은 것은 내 스스로 교회에 나왔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는 나의 동생이 있었고, 30년을 넘게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첫 직장의 동료가 있었으며, 10년이 넘게 췌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간절하게 나를 위해 기도해 줬던 친구동생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었고, 그리고 외삼촌, 고모, 가족들의 기도가 저를 갑자기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말단공무원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어 남자 아이 둘을 낳고 사는 아주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웃음이 피어나는 소박한 행복이 항상 저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남편이 공무원의 생활을 접고 사업의 길로 들어서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은 일에 대해서만큼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니 항상 과로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삶을 살던 어느 날 남편은 잠을 자다가 처자식 남겨놓고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살면서 제가 남편 없이 아이들과만 살아간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간혹 직장동료들이 애기아빠에 대해서 물어오면 중동건설 현장에 가서 건설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곤 저의 사생활을 들어내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도 애기 아빠는 항상 먼 곳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렇게 흐른 십년의 세월은 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이던 아이들을 20살이 넘은 청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아이들이 오직 나의 삶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벌려놓은 사업을 정리하다보니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빚만 잔뜩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몫까지 한다는 생각으로 두 배로 부지런하게 뛰고 살았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나무만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나의 슬픔을 가라앉히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원망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몇 년은 제가 정말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침 7시40분에 집을 나서면 밤 11시40분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6시에 낮 근무 끝나면 곰탕집에 가서 밤 11시까지 뚝배기를 나르는 일을 했습니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안 쉬고 일했습니다. 명절날도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남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시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십니다. 더 잘 해드리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마음이라도 위로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한 달에 한 번은 시어머니가 계신 충청도에 편지를 보냅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제가 교회 나가게 된 것을 알고 가장 먼저 좋아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의 아이들이 커 가는데도 순조롭게 자라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눈물만으로 살아가는 아이도 있더군요. 저의 큰 아이가 한의대진학목표였다가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하였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아이가 점점 불만이 쌓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안 풀리는 것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며 자신도 힘들게 하고 나도 힘들게 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어느 정도 이력이 나 있는데 자식의 방황과 번민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점점 힘들어서 감당할 수 없었던 어느 날, 나의 마음에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때 나의 심정은
“주님,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이제까지 나 스스로 열심히 살면 된다면서 힘들게 오랜 세월 보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를 받아주십시오.”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예수영접모임을 신청하고 그 모임이 있기 직전에 정말 놀라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제가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 아무도 없는 큰 벌판에 아이를 업고 외로이 있었습니다. 업고 있는 아이는 정말로 너무 춥고 고통스러워 저의 등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고통스러워 참기가 힘든지 몸을 많이 뒤틀고 흐느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에게 냉정한 것입니다. 전 그 아이가 저의 큰 아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아빠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듣게 하지 않으려고 인내하면서 변함없이 그를 지켜주었는데도 원망만 하는 큰 아이에 대한 서운함과 서러움이 그런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죽은 듯한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제 손바닥을 펴서 아이의 입에 대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 아이의 입에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가시뭉치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이상한 장면이라 제 자신도 깜짝 놀라서 그 길로 벌떡 일어나보니 새벽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솟다졌습니다. 나는 그것이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상한 감정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 그 꿈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이의 마음의 큰 고통을 아시고 치료해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아이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심할 때 비해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장산교회에 발을 디딘 날부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았던 저는 오직 순탄치 못한 저의 큰아이 기도가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새 내 자녀들뿐만 아니라 부모, 나의 모든 주위 사람들까지 기도까지 하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하루하루를 삽니다. 지금은 송화석 목장에서 목자님, 목녀님, 목원들의 따스한 사랑의 온기를 느끼며 친정 부모님보다도 더 평안함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목장식구들이 없었다면 그냥 교회만 겨우 다니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은 늘 저의 부족함을 기도로 채워주시며 예수영접모임과 세례 받기까지 인도해 준 목장식구들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이제 완벽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더욱 확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신앙의 성숙이 주님을  더욱 닮아가는 것이라는 걸 명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늦게 시작한 신앙생활이라 좀 더 열심을 내어 달려가고 싶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기도하고 찬양을 세 네 곡을 합니다. 주일에 주신 말씀을 복습하면서 삽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저를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시는 것 같고 나를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나오면서 낮에 일하고 밤에 무거운 곰탕 뚝배기를 나르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도 소원이 생겼습니다.
웃음치료사. 웃음이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큰 유익을 끼치는지를 알고는 웃음치료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 절망 속에 살던 나의 아이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 아이와 같이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013년 올해 초,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되는대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배운 것이 아깝기도 하여서 시작한 저의 실천은 복지관, 학교, 장애인단체, 암센터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더 나은 강연을 위하여 지금은 스포츠학원도 나가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이제 곧 조그만 가게를 창업을 할 수 있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나라의 도움을 받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영광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감동은 참 놀랍습니다. 제가 창업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 장산교회에 다니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도, 나도 몰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최경승 형제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반드시 성공하여서 저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도록 형제, 자매님들 응원해 주십시오.
형제, 자매님들! 오늘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 순조롭게 잘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20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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