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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간증 2012.12.02 (이경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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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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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저는 이태훈 목장에 소속되어있는 이경탁 목원입니다.
올해나이51세이며, 제가 하고 있는 일은 현대중공업 1차 협력사 영업부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군복무중인 큰아들과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작은 아들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제 어릴 적 교회에 대한 처음기억은 초등학교시절  크리스마스 날 예쁜 네온등의 반짝거림과  ‘흰 눈 사이로’ 노래, 교회에서 나눠주던 빠다빵이 전부입니다.
청소년시절 불교신자이시던 어머니와 절에 몇 번 다녀보곤 했는데, 산속에 있는  경치랑 그 은은함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 간부였던 저는 우리학교와 불교 교류를 맺고 있던 사직동의 한절에 갔었는데 마침 눈에 띄는 예쁜 여학생을 보고 부처님 뜻(?)으로 알고 절에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불심보다는 그 여학생과 만남이 더 좋아서 이후 절에는 잘 가질 않았고,  저의 고교시절 불교 신앙생활은 그렇게 추억으로 흘러갔습니다.
예비고사 한 달 앞두고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암투병과 사망, 어쩌면 제가 주님에게 다가가 문을 두드려야 되는 시기였으며, 또한 주님께서 저에게 손을 내미는 신호였고,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지의 1차 시련을 주시고 인내를 시험하지 않았나? 라고 지금 생각됩니다.
형님들 도움 없이 자립하고자, 대학을 중퇴하고 저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지금의 아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친구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던 저는 아내에게 거짓말과 온갖 핑계로, 그들과 어울리며 가정을 등한시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직책에 올랐을 때는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쭐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잘해서 잘된 것이고, 혹시 일이 잘 안 되면 상대방 탓으로 전가했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챙기는 시간보다, 남에게 시간과 호의를 더 베풀었습니다.
친구가 찾으면 언제든지 달려 나갔습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더 챙겼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빚이 생기며 아내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설상가상 직장도 반 정리해고식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주님께서 2차 시련을 주시고 다시 저에게 주님 앞으로 오기를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가정과 제 생활이 파괴되고 있어도 저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지 못하는 무지함으로 계속 제 자신을 합리화하며 생활하였습니다.
모든 게 귀찮고 세상을,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 저와 제 아내는 장모님을 8년 정도 모시고 살았습니다. 어느 때 부터 당신께서 주일마다 교회로 가셨습니다.
나이 드신 분이 항상 걸어가시는 게 안타까워 몇 번 차로 모셔다 드리길 반복하다 한번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본당입구에서 여러 명의 신도들이 처음 보았는데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부담스러웠습니다.
자리에 앉아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데 성경지식이 없으니 가시방석이었습니다.
빨리 시간이 지나길 바랐습니다. 트로트와 팝송에  익숙했던 저의 귀는 찬송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존심으로 입만 우물거렸습니다.
결국 그이후로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왔고 그렇게 시간은 몇 년 흘렀습니다.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올해 7월초 아내가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는 학교동생의 권유로 목장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뭔 목장? 누가 소키우나? 견학가나? 제가 아는 목장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개척시대 목장이었으며 회사 근처에 있는 수입소고기를 싸게 파는 식당                   
‘오케이목장’, ‘스카이목장’ 등이 제가 아는 목장 종류였습니다.
궁금했던 목장이란 곳에 다녀온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가정식 교회라는 것, 또 혹시 ‘이단종교가 아닐까?’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해소되고   모임내용과 운영방법이 참 괜찮더라는 말, 그리고 신도들의 눈빛과 대화에서 신뢰성과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긍정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아는 제 아내는 빈말을 안 좋아하고, 원칙과 정직 그리고 밥은 굶어도 세금은 내야하는
아주 좀 피곤한(?) 스타일이라서 저는 아내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도 다음 주 목장 모임에 같이 가자고 권유 하였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당신 혼자 가세요.” 했을 텐데 저는 무심코 “그럴까?”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아니고 가정집에서 한다고 하니 설교나 찬송 걱정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참 신기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꿈에 어느 이름 모를 교회에 줄을 서서 등록헌신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아내에게 이야기 하니 아내가 반기면서 이제야 당신이 정말 참다운 종교를 가질 준비가 되는 것 같다며, 이 교회와 목장이 우리가정과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라고 말하였고 저도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궁금하고 한편으론 조금 두려웠던 첫 목장모임에서 저는 너무도 편안하고 오래된 친구, 선후배같은 느낌을 맛보았고 앞전 타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체험하게 됐습니다.
그 주일날 들어선 교회는 목장으로 인해 들뜬 나의마음을 너그럽게 안아주는 어머니 품 같았고, 타 교회의 목소리크고 몸짓이 큰 목사님대신 강요하지 않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언제든지 기다리시는 다정하고 차분한 목사님을 보고 더욱 제 마음은 조금씩 더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목장모임과 주일예배는 꼬박 나오며 목사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모르는 것은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 수요일 찬양예배도 아내보고 같이 가자하니, 아내가 놀라면서 같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삶’ 공부를 하며 기초적인 지식을 쌓다보니 몸만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마음을 같이하는 신앙이 되고 있었습니다. 예수영접모임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영모’가 예영이 엄마 인줄 알았던 무지했던 제가 이제 세례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참된 아들이 되라고 세례수도 듬뿍 뿌려 주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입니다.
교회와 목장에 나오고 공부를 하며, 이제 저의 생활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던 술이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은 자동 취소되어 버렸고, 이전에는 퇴근시간 되면 “오늘은 거래처 또는 직원누구랑 한잔할까?”에서 눈길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하며 극동방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트로트대신 찬송가가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업무 중간 중간 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인생 별거 있어? 이대로 대충 살다 가는 거지.’에서 제대로 살아가야할 이유를 이제 찾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 하고 있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목원 및 주변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때론 저의 변화가 두렵기도 합니다. 이 믿음이 약해지진 않을까? 사단의 유혹에 빠져 또 향락을 찾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하는 순간, 달라지고 있는 또한, 달라져 있는 제 자신을 보고 이 모든 행함과 구분을 주께서 하시는 것이라 생각이 들며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몇 십 년을 해왔던 부모님 제사에 처음으로 기도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영접후의 변화가 구원의 확신과 예수님을 구주로서 언제나 순종하고 섬길 것을 제 자신에게 다짐해봅니다. 제 결단의 변화가 저와 제 가정과 주변을 조금씩 빛과 소금으로 비춰지고 채워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기에 이제 한 살입니다. 문을 열고 기다려주신 고마운 이정우 목사님과 부목사님 및 장로님들 모든 교회 식구분들, 그리고 저를 새 생명을 갖도록 주님께로 인도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항상 관심과 사랑으로 베풀어주신 이태훈 목자님. 조미숙 목녀님 그리고 따뜻함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목원 식구들, 너무도 제겐 고마운 분들입니다.
제가 새롭게 태어난 장산교회는 저의 고향이며 안식처이고 치유와 감동의 터전입니다. 몸만 다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음도 전도도 같이 하며 실행하는 참다운 자녀, 항상 기도하며 순종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이 모든 영광과 축복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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