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을 하려면 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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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1-12본문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는 근심이 있고, 세상 근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전자는 회개를 유발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기에 후회할 것이 없고, 후자는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고 했습니다.(고후7:10)
이 세상에서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종류의 근심이든 근심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해야 할 근심을 다하면 죽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에게는 각각 죽기 전까지 채워야할 근심 총량이 있을지 모른다는 ‘근심 총량제’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심을 하다가도 더 심각한 근심이 생기면 이전의 근심이 밀려난다는 것을 압니다. 이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당장 먹을 것이 없으면 이성에 대한 근심은 사라집니다. 먹고 사는 것이 더 우선적인 근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근심이든 하면서 살게 된다고 하면, 근심을 할 바에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이루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근심이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을 두고 근심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고(딤전2:4), 그 일을 교회를 통해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마28:19-20).
교회의 존재목적이 ‘영혼구원-제자 만들기’라는 사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담은 큰 데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안 될수록 부담은 더 클 것입니다. 어떤 목자님은 ‘영혼구원’이라는 말은 자다가 가위 눌리게 한다고 농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올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는 참 많은 수고와 섬김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어떤 근심이든 하고 살게 되는 것이라면... 아니 해야 한다면... 해야 할 근심의 총량을 다 채우고 죽게 되는 것이라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보다는 ‘영혼구원-제자 만들기’라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을 근심으로 삼고 그 총량을 채우며 갑시다. ‘영혼구원-제자 만들기’라는 부담을 할 수 없이 지는 것보다는 달게 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이 땅은 천국을 연습하는 장(場)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 갈 사람이 지옥 연습하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하늘에서의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의인 아흔아홉 사람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여 구원 받는 것입니다.(눅15:7) 우리는 이 천국 기쁨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가면서라도 얻기를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구원-제자 만들기’, 이것은 죽을 때까지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그리고 보상이 있는 운명적 부담입니다.(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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