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영접모임’,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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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6-01본문
기독교는 자신이 믿는 신(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유닉한(unique) 종교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놀라운 특권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이 특권을 모르거나 누리지 못하는 것은 정말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존재든 그로부터 태어나면 그의 자녀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거듭 난다’라고 말합니다.(요1:3) 거듭 나는 방법을 성경은 이렇기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를 맞아들인(영접한)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 1:12)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마음을 외적 절차 과정을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특별한 보호와 은혜 속에 살아가게 되는 특권이 생깁니다.
그 특권에 대해 일단 자주 듣게 되는 것만 말하자면, 육신적이고 세상적이었던 우리 삶의 태도에 거룩한 영적 감각이 생기고, 들리지 않던 설교 말씀이 들리고, 또 기도하면 응답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 감춰져 있던 하나님 나라의 보화가 엄청나다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됩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정말 소중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유보하거나 주저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이유인 것 같아 그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립니다.
1. 먼저 ‘영접’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영접을 ‘영접(迎接)’이 아니라 ‘영접(靈接)’으로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을 마음에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예수의 영과 접신(接神)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당이 접신하는 것처럼 ‘예수’라는 영이 나를 사로잡아 이상한 현상을 경험할 것 같은 생각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도리어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2. 예수를 영접하게 되면 그때부터 내 인생에 자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진짜 교인처럼 살아야할 것 같고 그러면 세상에 재미 있는 것들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새 삶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갓난아기에게 걷고 뛰는 것을 요구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세상의 재미도 더 의미 있는 새로운 재미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겁니다. 사실 제대로 된 신자들은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비신자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삽니다.
3.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종교를 바꾸면 집안에 우환이 올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섬기던 신이 자신을 해코지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해코지하는 그런 졸렬한 귀신이라면 그 귀신에 매여 있기보다는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귀신은 우리가 영접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맥을 못 추고 두려워 달아납니다. 내가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만 담대하면 쉽게 해결될 일입니다.
4. 예수영접은 완벽한 믿음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마 100%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부도 100% 믿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은 아닐 겁니다. 믿을 만하니까 믿은 것입니다. 예수 영접은 안 믿을 이유보다는 믿을 이유가 더 많으면 믿기로 결단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새로운 삶이 열리기 시작합니다.(20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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