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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가장 소중한 만남
성경>사55:6-7
찬송>330,466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려운 걸음을 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장산교회 이정우 담임목사입니다. 그저께, 금요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떤 절에 나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저를 보더니 전단지에 있는 저의 사진을 한 번 보고 저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하더니 ‘이 사람이네’ 하고는 저에게 인사한다는 것이 합장을 하며 “주지 목사님이시지요.”하고 말하는데 제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그래요, 잘 보셨습니다. 제가 주지목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만큼 여러분이 어렵고 어색한 자리가 이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왔는데도 아늑한 어머니의 품과 같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다 어머니의 품의 포근함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한 대로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왜 이 자리에까지 초대한 것일까요? 사실 스스로 나서지 않는 길을 재촉하는 것은 결례가 되는 일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결례를 무릅쓰고서 이렇게 여러분을 강청하여 초대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을 교회에 데리고 나왔다고 해서 이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월급 올려주지 않습니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이 자신의 돈을 써 가며 이렇게 합니다.

도대체 예수쟁이 아줌마들, 아저씨들 왜 이럽니까?
그것은 먼저 교회 나와 보니까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자꾸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혼자 살짝 알고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귀한 것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면 죄가 될 것 같은 심정이 되는 것입니다.
(신들러 리스트, 김재호의 권유)

●기독교는 이기적인 종교?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 좀 얄미울 때가 있으시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꼭 예수쟁이들은 자기네 종교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기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제가 예수쟁이들 중에 두목급에 있는 사람으로서 먼저 여러분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겨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겨우 살아 나온 그 길로 어떤 사람들이 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다. “그래 잘 가라” 그럴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또 몇 번 권유를 해 보고 안 된다고 “이젠 모르겠다. 그래, 잘 가라”고 해서도 안 되지 않습니까? 어찌했든지 끝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말려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는 길은 이 길이라고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예수쟁이들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예의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살 길이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죽으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래서 더러는 무례함을 무릅쓰고 강요하듯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어 있습니다. 그래도 행복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압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머잖아 그 날이 도둑이 예고 없이 오는 것같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죽긴 내가 왜 죽어? 말을 해도 너무 심하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분명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형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진정으로 행복하십니까?
“사는 게 그렇지 뭐 별수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 말은 인생을 나름대로 경험한 사람의 여유 있는 말 같지만 사실은 행복이고 뭐고 그런 것은 이미 사치이고, 그런 것은 이미 포기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행복을 갈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못합니다. 청춘 남녀가 결혼을 할 때는 행복을 꿈꾸며 웨딩마치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재의 통계상으로 보면 3쌍이 결혼하고 한 쌍이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별거 등, 사실 상 이혼을 합치면 거의 두 명중 한 명은 이혼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전에 미국 가정의 상황을 풍자하면서 했던 말 중에 아내가 남편을 급하게 부르면서 하는 말이 “여보, 큰 일 났어요! 빨리 와 보세요. 당신 아이와 내 아이가 우리 아이를 때리고 있어요! 빨리 가서 말립시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어색하지 않는 날이 벌써 당도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미움 시기 질투 다툼은 왜 있습니까? 질병은 또 왜 그렇게 종류도 많은지요. 아직 고칠 수 있는 병보다 고치지 못하는 질병의 종류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도 행복을 원하는데 왜 행복은 우리에게 오지 않을까요?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 같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받습니다. 분을 삭이지 못합니다.
나라들 간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나라마다 물어보십시오. 왜 전쟁을 하느냐고요? 오사마 빈 라덴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민족을 지키기 위해 테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미국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의 민족과 국가, 또 인간 세상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모두들 다 평화를 원하고 행복을 원하는데 국내나 국외나 할 것 없이 세상은 왜 이리도 난리의 소문만 무성한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개인이나 이 사회나 이 세상이나 모두가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행복을 원하면 무엇 합니까? 원함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점점 더 죽어가고 있는데요.
죽어가고 있다는 말은 죽을 날을 예약한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 날이 이르면 여러분은 아무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때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잘 들으셔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어야 할 우리의 영혼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정말 있나?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사람에게 영혼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전도하니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이 어디 있나? 당신 봤소?”
여러분, 정말 봐야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영혼이,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봐야 있는 것이냐 말입니까? 우리는 이미 보지 못하고서도 많은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저는 군에 있을 때 통신병이었습니다. 통신 ‘통’자도 몰랐는데 통신병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통신이 아니라 고급통신병이었습니다. ‘극초단파 운용병’이라고 영어로는 마이크로 웨이브 운용병입니다. 이게 무엇이냐하면 군용 DDD전화 장비를 다루는 운용병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이야 통신 장비가 너무나 발달해서 그렇지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위관급 이하 군인들은 유선통신을 주로 이용했고, 영관급 이상이 되어야 이 장비를 이용한 통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통신에 관한 한 문외한이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기본군사교육을 받고 난 뒤, 후반기 주특기 교육을 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전자과나 통신과하고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관련이 없을 것이기에 후반기 주특기 교육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세월아 네월아 가라 국방부 시계야 빨리 가라’하고 지내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첫 교육시간부터 나는 강의에 쏙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 통신이란 것이 전자나 통신 관련 학문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신학하고 더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 이런 놀라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듣고 있는 소리가 전부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세계에, 제가 듣지 못하는 세계에 수많은 소리가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핸드폰 사용하시죠. 핸드폰에 연결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 하나 들고 다른 사람에게 할 말 다 하고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믿고 그렇게 써시나요? 정말 믿음이 좋습니다. 여러분 집에 리모콘 하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리모콘 버튼 하나 누르면 작동됩니다.
통신장비를 운용하기 전에 먼저 내가 볼 수 없지만 실재하는 엄청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이 고후4:18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볼 수 없다고 ‘없다’ 말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잠간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변하지도 않고, 영원한 세계입니다.

영혼은 우리의 육신의 세계를 뛰어 넘은 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미국 에모리 대학의 심장의학과 교수들의 보고

●죄가 영혼을 죽였다
그런데 바로 이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산 사람만이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만날 때 행복을 회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왜 죽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사59:2)에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우리의 죄가 갈라놓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이 죄를 타고납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를 가진 인생은 죄의 습성이 있어서 여전히 죄를 즐깁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잃었던 우리의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파스칼이라는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퍼즐놀이를 아실 것입니다. 다른 모든 조각을 다 맞추어도 한 조각이 맞지 않으면 그것은 완성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으로만 메울 수 있는 공간이 빈 상태로 남아있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항상 공허하며 항상 허전할 것입니다.
알지 못해 허전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공간을 메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107:9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 만나는 길, 예수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조금 예수 열심히 믿으면 ‘예수쟁이’라는 말을 합니다. 간혹 놀린다고 하는 말일 수 있으나 저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쟁이’라는 말은 전문가들에게 붙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희들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하나님쟁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예수쟁이’라고 말을 할까요?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답이 있습니다.

전도를 나가보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을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꼭 무엇을 보아야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이 제자가 이와 비슷한 말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
이 말은 “예수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얼마나 잘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14:9-10)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죄의 값인 사망의 저주 가운데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예수, 그 분의 십자가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믿으면 곧 구원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죄 때문에 잃었던 모든 불행에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행6:33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믿으면 잃었던 에덴동산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행복이요 죽어서도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이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까 리모콘 이야기를 잠간 했습니다만 우리가 리모콘의 원리를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작동을 믿고 그냥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면 TV는 켜지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고 여러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 세상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돈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세상이며 또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까? 아침에 콧노래 부르며 출근하였다가도 저녁에 싸늘한 시체로 변해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살아보려 아침에 일찍 출근했다가 비행기 테러로 무너져 내린 뉴욕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거기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5,000여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보다 죄가 많아 그렇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품에서 사는 인생이 되십시오.
(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결단하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에
(사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러분, 제발 다음으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예수님을 믿으심으로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가장 복된 남은 생애를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주후200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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